자사주 매입에도 주가는 지지부진..이유는 '무늬만 매입'
[파이낸셜뉴스]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지만 주가 반등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늬만 매입'에서 벗어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매입, 1년 새 60% 늘어났지만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신청은 175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09건)과 비교하면 60.5%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는 것은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은 물론 내부에서 어느 정도 주가가 바닥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코스피 기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9.8배, 주가순자산비율(PBR) 0.97배로 각각 장기 평균인 10.1배와 1배를 하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사주 매입은 성장기업들이 포진돼 있는 코스닥에서 더 활발히 일어났다. 지난해 5월 24일까지 59건의 신청이 있었지만 올해는 114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코스피의 경우 지난해 50건에서 올해 61건으로 늘어났다.
일부 상장사들은 일회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 2회 이상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기업은 셀트리온, SK아이이테크놀로지, 한샘, 키움증권 등 10개 기업이다. 특히 셀트리온은 올 들어서 세 차례에 걸쳐 2512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공시하고 현재까지 약 1930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그러나 자사주 매입 공시는 주가 반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셀트리온은 자사주 매입을 시작한 지난 1월 11일(19만6000원) 이후 이날(14만5000원)까지 주가 하락률은 무려 26.02%에 달한다. 한샘은 지난 3월 25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뒤 현재까지 18.62% 떨어졌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자사주 매입의 주가 부양 효과는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무늬만 매입'은 주가 부양 효과 적어"
주가 부양을 위한 기업들의 노력에도 효과가 적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증시를 꼽기도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 매입을 하거나 매입 후 소각은 주가 방어 효과는 있지만 거시경제의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시를 위한 '무늬만 매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신탁 매입'과 '소각 없는 매입' 공시가 대표적이다.
이효섭 실장은 "신탁회사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는 공시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이라며 "회사가 공시만 하고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주주가치 제고라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신청된 자사주 매입 중 신탁 매입의 비중은 63.4%에 달했다.
또한 국내 증시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지 않고, 심지어 차익 실현을 위해 고점에 파는 경우도 많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상승해도,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주가 상승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해 자사주 처분을 결정한 상장사 중 소각을 결정한 곳은 20여 곳에 불과하다. 카카오, 네이버, 아모레퍼시픽, SK 등은 임직원 상여금 지급 등을 위해 자사주를 매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주주들은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하는 라이프자산운용은 자사주를 쌓아 놓은 SK에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이미 매입해 놓은 자사주가 있다면 주주들은 소각 요구를 할 것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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