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드 정상회의 승자는 모디?.. "인도 국익 관철시켜"

김태훈 2022. 5. 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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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규탄, 원론적 수준 그쳐
인도, 최대 무기 수입국 러시아와의 관계 중요
영토 분쟁 상대방 中 겨냥해선 날선 경고 동참
24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쿼드 4개국 정상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신임 호주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앨버니지 총리 SNS 캡처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의체 ‘쿼드’ 정상회의에서 인도가 자국 입장을 적절히 관철시키면서 확실한 이익을 챙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쿼드 정상회의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규탄 수위는 ‘원론적’ 수준으로 낮추면서, 중국에 대해선 한 단계 올라간 경고 목소리를 낸 건 인도 의중이 주로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인도는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중국과는 적대적이나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신임 호주 총리, 그리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참석했다. 회의 후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쿼드 정상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질서의 근본 원칙들을 훼손하고 있음을 지적했다”며 “일방적인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는 어디서든, 특히 인도·태평양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비난하긴 했으나 그 수위는 ‘국제질서의 근본 원칙 훼손’이란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쿼드 4개국 중 미국·일본·호주의 그간 태도를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더 강한 수위의 비난 표현이 나와야 하겠으나 인도가 앞장서 이를 막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 발발 후 인도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를 직접 비난하는 것을 거부했다. 러시아 규탄 결의안 채택을 위한 유엔 회의에선 기권하기도 했다.

대신 인도는 ‘각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거듭 강조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주권 존중의 원칙에는 어긋난다는 의미다. 이날 쿼드 정상회의에서 나온 ‘국제질서의 근본 원칙 훼손’이란 표현과 대동소이하다.

쿼드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을 향해선 날을 세웠다. ‘중국’이란 특정 국명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일방적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는 인도·태평양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란 경고는 명백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쿼드 정상들은 또 인도·태평양 지역 인프라 분야에 앞으로 5년간 500억달러(약 63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채무 문제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일대일로’ 정책 등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모디 총리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다. 뉴델리=AP연합뉴스
결국 러시아와의 좋은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중국의 팽창은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인도의 의중이 거의 그대로 관철됐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밉고 중국도 미운 미국·일본·호주 3국의 입장과 중국은 밉지만 러시아에는 그럴 수 없는 인도의 입장이 절충해 공통분모를 도출한 셈이다.

인도는 국경을 접한 중국과 오랫동안 영토분쟁을 벌여왔으며 이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과 친한 파키스탄 역시 인도로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간 인도는 중국과 1차례, 파키스탄과는 3차례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이에 인도는 러시아에서 막대한 양의 무기를 수입해 중국·파키스탄을 견제해왔다. 인도가 보유한 군사장비의 대략 70~85%가 러시아산이란 통계가 있을 정도로 두 나라는 무척 깊이 연결돼 있다. 만약 인도가 러시아와 사이가 나빠지면 러시아는 인도 말고 중국·파키스탄에 첨단무기를 수출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은 인도 입장에선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영국 BBC 방송은 “인도를 뺀 쿼드 3국, 특히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인도가 보인 태도에 몹시 분노했다”며 “하지만 지난 4월 미국·인도 간 2+2(외교·국방장관) 회담 후 미국 정부가 인도의 입장을 양해했고, 일본·호주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이 밀착하는 건 인도 국익을 위협하는 전개”라며 “결국 쿼드는 러시아 성토는 최소화하되 4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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