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동시다발 투자보따리 4곳서만 600조원..약속한듯 "국내투자"
'신기업가정신' 선포일에 릴레이 발표..'美에만 투자' 지적 의식한듯
새 정부의 '민간주도 성장 지원' 정책 뒷받침 차원 해석도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보름째인 24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예고에 없던 깜짝 발표다.
삼성·현대차·롯데·한화 4개 그룹이 발표한 액수만 약 600조원에 달한다. 이는 3년, 5년 단위의 총투자 액수를 합친 것이긴 하지만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올해 본예산 607조7천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SK, LG 등도 조만간 투자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전체 투자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투자 보따리를 푼 것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인 '민간 주도 성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기업들은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일인 이날 약속이라도 한 듯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국내 투자' 부분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현대차 등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 '국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은 이날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정보통신)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관계사들이 함께 45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450조원 가운데 80%인 360조원은 '국내 투자'임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나온 대규모 투자 발표로, 한미 '반도체 동맹' 강화와 현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의지에 적극 부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삼성은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 새로운 시장 창출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도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은 다음 달 미국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0조원)가 투입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다.
현대차그룹 산하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3사도 2025년까지 3년여간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3사는 "대규모 투자를 국내에 집중함으로써 '그룹의 미래 사업 허브'로 한국의 역할과 리더십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인 지난 21∼22일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전용 공장 및 배터리셀 공장 설립과 로보틱스·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도심항공모빌리티(UAM)·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대한 총 105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국내 투자 발표는 미국 투자 발표 이틀 만에 이뤄진 것으로, 대표적인 토종 기업으로서 국내 산업 활성화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롯데그룹은 바이오와 모빌리티 등 신사업 중심으로 5년간 국내 사업에 37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롯데 투자 중 41%는 신사업과 건설, 렌탈, 인프라 분야에 집중된다.
한화그룹도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우주항공 등의 분야에 국내 20조원을 포함해 총 37조6천억원을 투자한다고 공개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5년간 2만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들 4개사가 이날 발표한 투자액은 총 587조6천억원이다.
SK그룹도 조만간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SK도 곧 (투자·고용) 발표가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LG그룹도 현재 투자 계획을 가다듬고 있으며, 이르면 이번 주 내 발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데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먼저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데 대한 화답 차원에서 국내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 대해 세제 혜택 등을 통한 지원 가능성이 있어 이참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기업들이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조치 장기화, 인플레이션 등 갖은 대외 악재로 우리 경제가 전례 없는 복합위기를 맞은 상황이어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차원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태원 회장도 "어려울 때 투자와 고용을 발표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에만 진출하고 국내 투자는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배터리나 반도체 등 미래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 추가 생산설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해외에만 지을 수 없으니 이와 병행해 국내 투자를 발표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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