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는 자가 배신자?..'수박 논쟁' 휩싸인 민주당

박성의 기자 2022. 5. 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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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 저격한 박지현 향해 지지층 '폭탄‧욕설 문자' 쇄도
사과‧반성 말하면 당내 비판 직면에..박용진 "이러면 지선도 진다"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 집중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위원장은 "다른 의견을 내부 총질이라 부르는 세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민주당이 돼야 제대로 개혁하고 온전히 혁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팬덤', '세력' 등의 표현으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지칭했다. 사실상 이들이 민주당의 위기를 불렀다는 진단이다. 박 위원장의 주장을 두고 당원, 의원 간 평가가 엇갈린다. 박 위원장 의견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박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소장파를 겨냥해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 혹은 지지층을 가리키는 멸칭)이라 조롱하는 지지층도 적지 않다. 위기에 대한 진단, 쇄신 방향 등을 두고 민주당 내홍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갈등 때마다 등장하는 '수박'

지난 대선 경선은 갈라진 민주당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 간 경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지지층들이 서로를 겨냥해 '수박'이라 비판하기 시작했다. 경선 결과 이 후보가 50.29%를 얻어 최종 후보로 선출됐으나, 이 후보 측에서 경선 중도에 사퇴한 정세균, 김두관 후보의 표를 무효표로 처리하는 것에 반발하면서 내홍이 일기도 했다.

이후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은 '원팀'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패하면서 팀은 깨졌다. 되레 책임 공방이 일고 있다. 박용진, 조응천 의원 등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반성 없는 민주당을 비판하자 다시금 '수박'이라는 비판과 '폭탄 문자'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박 위원장도 '조국 사태'와 당내 성 비위 논란을 비판하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적 박탈)에 우려를 표하자, 이른바 '개딸'(개혁의딸‧이재명 여성 지지층)들이 사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계파 갈등과 지지층의 분열이 민주당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힘 역시 과거 '친박‧진박' 논란이 일었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지지층으로 흡수할 것인지, 아니면 극우의 목소리로 선을 그어야 하는지를 두고 당원 간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과 차이가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보수 정당의 경우 중도를 품기 위해 극성 지지층과 선을 그으려 한 반면, 최근 민주당의 경우 전통 지지층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단 지적이다. 이탓에 반성과 쇄신을 주장하는 온건‧중도 정치인은 '수박'으로 불리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선거에서 진 정당은 노선을 변경해야 된다. 당이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한테 끌려다니고 있다. 지방선거를 치르려면 이들이라도 결집시켜야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말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태도는 그렇지 않다.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에 지금은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강경파 정치인들의 목소리만 남은 당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에서 졌는데도 이러는데, 민주당이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 인준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진 "지선도 무난하게 가면, 무난하게 진다"

대선 결과가 민주당을 '딜레마'에 빠뜨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선거에서 대패한 정당은 '백서'를 만들고 쇄신을 시작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0.73%의 득표율 차로 패했다. 그렇다보니 위기감이 아닌 아쉬움이 남았고, 기존 지지층만 안고 가도 국민의힘과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인지라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외면할 용기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28일 시사저널과 만나 "(민주당이)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데 스스로 격려하고 있다. 혁신해야 하는데 '잘 싸웠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나마 반성하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또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후보는 47.83%를 얻어 0.73%포인트 차로 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47%의 권력을 갖게 되었나.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사라진 상황이다. 통렬한 반성과 혁신이 아닌 질서 있는 수습만 이야기해선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도 무난하게 가려고만 하다가는 무난하게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위원장이 발표한 민주당의 쇄신안이 제대로 실현될 지도 미지수다. 민주당 의원들과 수뇌부가 박 위원장 의견과 대립되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위원장이 금주 중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대년생) 용퇴론' 등 쇄신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당과 협의된 것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박 위원장의 사과 발표가 예정된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로운 약속보다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라고 발언했다. 사실상 박 위원장의 사과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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