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서 두 번이나 대형 물류창고 화재.. 불안한 주민들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잔뜩 뒤덮었어. 매번 이런 일이 생기니 내가 동네를 떠나야 하나 싶다니까”
24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서 만난 주민 A씨(84)는 크리스 F&C 물류센터 화재 상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오전 11시40분쯤 이천시 마장면 이평리 크리스 F&C 물류센터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21시간여만인 이날 오전 8시54분 모두 꺼졌다.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근무자 1명이 화재 진화 중 다쳤다. 샌드위치 패널 건물 내외부가 불에 타 소방서 추산 47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건물 내부에 설치돼있던 스프링클러는 펌프 고장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불은 완전히 꺼졌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불이 난 물류센터는 지난해 6월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쿠팡 덕평물류센터와 불과 2k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 마을에서 한 해 동안에만 2건의 대형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마을에는 아직 쿠팡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날 폭삭 내려 앉은 건물 인근에는 아직 치워지지 않은 까만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석탄처럼 까맣게 탄 잔해물은 화재 현장에서 수백여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모내기를 마친 논 곳곳에는 주먹만한 잔해들이 쌓여 있었고, 길 건너 민가나 식당 앞에서도 발견됐다.
A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원래 60여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면서 “불과 10년 사이 대형 물류창고들이 들어서면서 이렇게 됐다. ‘세상이 변하면 이런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민 B씨는 “동네에서 연달아 계속 큰불이 나니까 불안하다”면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도에서는 유독 대형 물류창고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1월에는 평택시 청북읍에 위치한 팸스 물류창고 신축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건물 안에 투입됐던 소방관 3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2020년 4월에는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로 작업중이던 노동자 38명이 숨졌다.
사고가 잦은 이유는 입지적,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하고 있다. 우선 경기도에는 전체 물류 창고의 3분의 1에 달하는 물류창고가 밀집해 있다. 물류창고 수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화재가 발생한다.
물류창고 국가물류통합정보센의 지역별 물류창고업 등록현황을 보면 이날 기준 전국에는 총 4805개의 물류창고가 있는데 경기도에는 1653개(약 34%)가 밀집해 있다. 두 번째로 많은 경남(596개)보다 1000개 이상 많다.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건설현장 화재 문제점 분석 및 저감방안 : 이천물류창고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경기도의 입지적 특성 탓에 물류창고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경기도 물류창고 중 60% 이상은 용인, 이천, 평택, 광주에 있다”면서 “온라인 쇼핑시장 확대로 배송분야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수도권 물류기지 역할을 하는 경기도 물류창고의 확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다수의 물류창고는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과 우레탄 등 단열재를 채워 넣은 건축자재인 샌드위치 패널을 조립하는 형태로 지어진다. 가격이 저렴하고 공사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샌드위치 패널에 가연성 자재 사용을 제한하는 건축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됐지만, 기존에 지어진 건물에는 소급 적용할 수 없어 아직 쓰이고 있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샌드위치 패널의 단열재는 기본적으로 석유화학 제품이라 인화성이 강하고 연소 확대가 급속히 이뤄진다”면서 “물을 뿌리더라도 단열재까지 물이 침투할 수 없어 진압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법령 강화와 함께 화재 발생 자체를 줄이기 위한 예방적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면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안전 관리에 대한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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