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과 초과세수

한겨레 2022. 5. 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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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위해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우석진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요즘 국회에서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금과 손실보전금을 지급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한창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는 손실보상 소급적용 여부 등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추경 재원 마련과 관련해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7조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사업 지출구조조정은 사실상 어렵기에, 사업이 지연되거나 대상 인원이 감소해 발생하는 집행잔액 위주다. 공무원들 연가보상비도 포함됐다. 여기에 세계잉여금, 한국은행 잉여금, 기금 여유자금 등까지 긁어모아 8조1천억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추경 재원은 의문의 초과세수 53조3천억원에서 나온다.

초과세수란 예산편성 때 기대했던 것보다 더 걷힌 세금을 말한다. 사후적인 개념인 만큼 세금을 다 걷어봐야 그 규모가 확정된다. 정부가 이번에 제출한 추경안에 포함된 초과세수는 5월 현재 시점에서 확정되거나 이미 걷힌 게 아니라, 올해 연말에 예상할 수 있는 기대 초과세수다.

대규모 초과세수는 왜 갑자기 정권이 교체되면서 발생했을까? 이는 지난해 예산편성 때 올해 세수를 적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2021년 거둔 세금이 약 344조원이었는데, 2022년에 그보다 1조원 적은 343조원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8월에 예산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세수추계가 과소 추계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지난해 하반기(1.5%) 성장률이 상반기(2.5%)보다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재부의 변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반기의 추세를 그대로 이어서 전망했다면 연말 세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올해 예상세수 역시 커지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에서 53조원 규모 초과세수는 없다. 이미 걷힌 초과세수 일부가 있긴 하다. 3월 기준으로, 법인세가 10조9천억원 더 들어왔다. 4월 분납분까지 더하면 여기에 10조원이 추가된다. 반도체, 금융, 철강, 정유 등 주요 업종 기업들의 2021년 실적이 세무당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코스피 12월 결산법인 영업이익이 2020년 67조5천억원에서 2021년 106조8천억원으로 58% 이상 증가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법인의 영업이익은 법인세수 증가로 이어졌다. 근로소득세는 5조1천억원 더 들어왔다. 올해 상반기 상용근로자가 증가했다. 여기에 300인 이상 기업의 명목임금이 14.2% 증가했고, 특별급여도 크게 늘었다. 고소득 근로자의 소득이 늘어난 몫이 큰 셈이다. 부가가치세도 예상보다 4조1천억원 더 걷혔다. 부가가치세수 증가에는 물가 상승도 한몫했다. 종합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지난해보다 30조원가량 세금을 더 걷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운데 40%가량은 지방정부 몫이어서, 중앙정부가 융통할 수 있는 것은 18조원 정도다.

추경 통과 뒤 당장 지출해야 할 정부지출은 소상공인 손실보상 1조5천억원, 손실보전 23조원을 포함해 36조4천억원이다. 현재 국고에 들어와 있는 초과세수, 지출구조조정, 기금 여유재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상적인 기재부였다면 우선 단기 재정증권을 발행해 지출하고, 수입이 들어오면 이를 상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채 발행 없이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이 선택지는 없어졌다. 스스로 손을 묶은 결과다. 대안은 한국은행 일시차입이다. 정부는 회계연도 내 일시적인 현금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한국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한국은행 일시차입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코로나 시국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자율은 보통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의 일평균 유통수익률에 0.1%포인트를 더해서 계산한다. 다만 한국은행은 차입 부대조건으로 “재정증권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추경 재원 조달 방안과 관련해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초과세수는 얼마인지, 기대 초과세수는 어떤 가정과 모형에 기초해 계산했는지 밝혀야 한다. 기재부가 내놓았던 2021년 예상세수, 2022년 예상세수 모두 크게 틀렸는데, 이번에도 믿어달라고만 하는 건 양치기 소년과 같은 행동이다. 만약 올해 초과세수가 53조원에 미치지 못하면 그때 가서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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