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후보자의 기억 : 거짓말인가? 판단 무능인가?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2017년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오전에는 국가 재난 사고 아니었다”고 증언
●재판·수사기록에는 당일 오전, 청와대-해경 핫라인 가동 “선실에 승객 갇혀 있다” 보고받아
●김기춘 등 판결문에도 “오전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고 인정
2017년 2월 1일. 며칠 뒤 입춘이었지만, 영하를 밑도는 추위가 이어졌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열 번째 변론이 열렸다. 이날 헌법재판소에 청와대 참모들이 증인으로 여럿 소환됐다.
이 중엔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 김규현도 있었다. 그는 국가안보실 1차장 소관의 위기관리센터를 책임지고 있었다. 김규현은 재판 시작 20분 전인 오전 9시 40분쯤 헌법재판소 청사에 도착했다. 굳은 얼굴로 대심판정으로 들어가 증인석에 앉았다.
이날 오전에 열린 10차 변론의 쟁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는지였다. 세월호 참사의 최초 인지와 대통령 보고 시점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김규현은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 때, 대통령을 탄핵했느냐"고 언성을 높였지만, 대통령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김이수 헌법재판관과 증인 김규현 사이에 질의응답이 오갔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청와대가 사고를 인지한 시점과 초기 대응을 놓고 날선 대화가 이어졌다. 김이수 재판관은 당일 오전에 왜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 나오지 않았는지 캐물었다. 증인 김규현은 대통령이 상황실에 나올 만큼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맞섰다.
▲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관 : 제 생각에는 만일에 대통령께서 적어도 10시 보고받고, 10시 15분 안보실장하고 통화하고, 10시 반에 해경청장하고 통화해서, 특공대까지 투입하는 지시를 했으면, 적어도 위기센터상황실에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김규현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 : 저희는 보면 그날 99번 통화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바로 내려오셔서 하실 정도의 상황이라는 심각성은 아니었다고 판단한 거죠.
- -박근혜 탄핵심판 10차 변론 중 (헌법재판소, 2017. 2. 1) -
김이수 재판관의 추궁은 계속됐다. 이에 김규현은 오전 상황에선 대통령이 나와 진두지휘해야 할 만큼, 국가 재난 사고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관 :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에 안 나오시면 적어도 모시러 가서 현장에 나오셔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한다, 적어도 나와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김규현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 : 초기 상황에 대한 저희 인식이, 대통령께서 나와서 진두지휘해야 할 상황이라는 인식은 없었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죠. 재난의 성격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오전 상황에서 국가재난 사고라고 인식할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 -박근혜 탄핵심판 10차 변론 중 (헌법재판소, 2017. 2. 1) -
이날 증인석에 앉은 김규현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참사 당일 오전엔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청와대가 판단했다는 입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 김이수 당시 헌법재판관 : 그런데 470명 정도가 타고 가서 침몰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걸 위기 상황이라고 안 보시는 겁니까? 그 정도로 위기관리센터에서 관리를 했으면 위기 상황인 거예요. 국가안보실에서 그렇다면 전체 상황을 관리하던 세월호 사건 관련해서 문책을 한 사람이 있나요?
△ 김규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 재난의 성격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오전 상황에서 국가재난 사고라고 인식할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 -박근혜 탄핵심판 10차 변론 중 (헌법재판소, 2017. 2. 1) -
김규현 사고 당일, "안도의 숨을 쉬고 정상적으로 식사를 했다"
김규현은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유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들어오는 정보의 시스템을 탓했다. 이어 김규현은 참사 당일, 낮 12시 58분 방송에 전원 구조가 나왔고, “다들 안도의 숨을 쉬고 정상적으로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는 것이다.
△ 김규현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 : 심각하게 인식을 못 했다. 저희들이 그건 들어오는 정보,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돼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 아마 12시 58분에도 방송에 370명 구조, 크게 톱뉴스로 나오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안도의 숨을 쉬고 정상적으로 식사도 하고 그랬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 -박근혜 탄핵심판 10차 변론 중 (헌법재판소, 2017. 2. 1) -
이렇듯 참사 당일, 오전 중에는 심각한 재난 사고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김규현의 ‘기억’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뉴스타파는 탄핵 이후 검찰에 기소된 비서실장 김기춘,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김관진, 위기관리센터장 신인호 등의 재판 기록과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 사건’의 수사 기록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 직후인 오전에는 심각한 재난 사고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김규현의 증언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해경-청와대 핫라인 "배에 승객 갇혀 있다" 김규현은 보고 못 받았나?
먼저, 김기춘 등의 1심 판결문(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합306)의 인정 사실 부분이다. “국가안보실은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가 나기 전인 10시 47분경부터 선체 내부에 승객들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금 길지만, 판결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당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에서는 전원구조 오보가 날 무렵인 10:47경 승선원 477명 중 세월호가 전복된 시점에 구조된 인원이 109명이며, 주변 해상에 표류 중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관련 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확인하여 나머지 약 360명이 실종되었거나 선체 내부에 잔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었고, 10:51경에도 해경 상황실에 세월호 주변 해상에 표류 인원 유무를 확인하여 구조된 인원을 제외하고 거의 다 선실에서 나오지 못한 것 같고, 주변 바다에 떠 있는 인원은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아 구조되지 못 한 사람들이 선체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여 언론의 오보와 무관하게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중략)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위기관리센터에서 구조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면서 구조되지 않은 인원들은 실종 또는 선체 내부에 잔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계속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해경의 잘못된 구조인원 보고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0명 이상은 선내에서 잔류하고 있어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판결문(2018 고합 306) 중 (2019. 8.4)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한 데는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와 해양경찰청 상황실과 주고받은 핫라인 대화 내용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검찰 수사 기록을 종합하면, 청와대와 해경의 핫라인은 사고 당일 총 99번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핫라인 통화에서 해경측은 “지금 대부분 선실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부 학생이다 보니까 선실(세월호 내부)에 있어서 못 나온 것 같다”는 등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반장에게 지속적으로 위급 상황을 전했다. 이같은 보고가 청와대에 전달된 시간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방송에 나오기 전인 오전 10시 52분이었다. 이때, 청와대와 해경간 핫라인 대화를 일부 옮기면 아래와 같다.
(전략) BH : 지금 거기 배는 뒤집어졌는데 지금 탑승객들은 어디있습니까?
해경청ㅍ: 탑승객들요?
BH: 네네
해경청 : 지금 대부분 선실 안에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BH : 아니 그 지금 해경 헬기 떠 있잖아요?
해경청 : 떠가지고 구조하고 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지금 배에 있는 것 같습니다.
BH : 아니 전화받으신 분 누구십니까?
해경청 : 네 김XX 주임입니다.
BH : 남은 인원들이? 거기 인원들 혹시 물에 떠 있는 인원들 있습니까? 그 전에
해경청 : 네 전부 학생들이다 보니까 선실에 있어서 못 나온 것 같아요.
BH : 그거 확인 안 됩니까?해경청: 저희가 지금 구조를 백여명 했는데요. (후략)
- - 해양경찰청 상황실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핫라인(2014년 4월 16일 10시52분)
오전 11:00쯤부터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오보를 본 청와대 측은 11시 7분쯤, “학생들 다 구조됐다고 나오는데 인원 아직 안 나왔죠?”라고 물었고, 해경 측은 “저희는 파악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이런 대화를 나눈 지 30분이 지나고서 ‘전원 구조가 오보일 수 있다’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서 위기관리센터를 관할하던 김규현은 박근혜 탄핵심판 증언에서 “방송에서 나온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의 숨을 쉬고 정상적으로 (점심) 식사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 김규현은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오후 2시 25분에 알게 됐고, 오후 2시 50분에야 박근혜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의도한 거짓말인가 아니면 상황 판단 못한 무능인가?
김규현의 증언이 맞다면, 그는 오로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사실로 굳게 믿고서 안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사 당일에 99번이나 청와대와 해경 사이에 오갔던 핫라인 보고를 유독 김규현만 파악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보고받고서 짐짓 무시한 걸까?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김규현은 상황 판단력이나 지휘 능력이 태부족한 무능한 공직자이고, 후자라면 자신과 박근혜의 초기 대응 실패를 감추기 위해 태연히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둘 중 진실이 무엇이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정보를 다뤄야 할 공직자로선 함량 미달이다.
김규현은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1차장,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규현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보고 시각 조작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처벌은 피했다.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신인호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안보 책임자로 돌아왔다. 신인호는 국가안보실 2차장, 신인호의 직속 상사였던 김규현은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도 고위공직자로 발탁되고서 과거 연루된 세월호 참사 대응 실패와 이에 따른 조작·은폐 행위에 대해 반성이나 사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국가정보원 측에 이메일을 보내 세월호 사고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서 당시 사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비상 상황을 알리는 보고를 받고도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인지, 5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했던 증언의 진실이 무엇인지, 김규현 후보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김규현 국정원장 후보자는 5월 24일 오후, 국정원 대변인을 통해 답변을 보내왔다. 김 후보자는 헌법 재판소에서 증언은 “당시 현장 및 언론에서 보내온 정보 등을 바탕으로 한 안보실의 인식을 있는 그대로 답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또 “당시 국가안보실은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 파악 및 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 다수의 희생이 발생한 점에 대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희생자 유가족분들, 그리고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내일 청문회 과정을 통해 관련 질의가 나오면, 진솔하게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현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내일(5월 25일) 열린다.
뉴스타파 강민수 cominsoo@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