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기준은 공정하게 합의됐나..연극 '당선자 없음'
최근 몇년간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가 ‘공정’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공정에 대한 합의는 과연 공정하게 이뤄졌을까. 지난 17일 막을 올린 <당선자 없음>은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제정 과정을 다루며 공정의 기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극작가 이양구, 연출가 이연주가 2019년 호평 받은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이후 다시 협업한 작품이다. 2013년부터 동시대 화두에 대해 촉각을 세워온 두산인문극장이 올해 선정한 주제 ‘공정’의 첫 작품으로 선보인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두 축으로 전개된다. 제헌 헌법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은 PD가 작가와 함께 헌법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극중극 형식이다. 연극은 ‘공정의 기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준이 처음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제헌 헌법 탄생 과정을 끌어온다. 1948년 5월10일 남한 단독 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 정부를 선포하기까지 일련의 흐름 속에서 헌법에 담긴 것과 누락된 것, 그 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70여년의 시차가 있는 현재의 시간은 방송제작사를 배경으로 방송작가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 편집권 검열 논란 등이 벌어진다.
검열과 관련된 기본권 침해 논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회 전문위원으로 근무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이양구는 ‘작가의 말’에서 “이 극 속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모두 정치적 격동의 ‘전환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탄핵 이후 치러졌던 선거와 올해 대선까지 지속적인 변동 과정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해방 후 단독정부 수립까지의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 인식했다”고 밝혔다.
극중 PD의 말처럼 헌법은 “살아있는 현실”보다는 마치 “화석”처럼 인식되곤 한다. 연극은 우리가 ‘공정’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기준 역시 시대적 상황에서 이뤄진 ‘합의’의 결과물이며 박제된 화석처럼 절대적인 공정은 성립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또 그 ‘합의’의 과정에서 배제된 목소리는 무엇이었으며 여전히 어떤 목소리가 공정이란 화두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무대는 단차 없이 3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였고 배우들은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연기한다. 이연주 연출은 “마음의 단차 없이 각자의 서로 다른 위치와 거리를 확인하면서 ‘공정’이라는 화두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극의 제목인 ‘당선자 없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해 진행된 ‘정부 수립 기념 표어’ 모집 결과에서 따왔다. 당시 응모된 4353편 중 1등 당선작은 없었고, 2등과 3등만 정해졌다. 이양구 작가는 “‘당선자 없음’이란 제목은 해방 후 통일된 나라를 만들지 못한 채 남한 단독 선거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헌법 초안 작성 과정에 광범위한 시민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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