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 없다"..러시아 외교관, 우크라이나 전쟁 항의하며 사임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사임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보리스 본다레프 제네바 주재 러시아 대표부 고문(41)은 2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동료 외교관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외교 경력 20년 동안 조국을 이렇게 부끄럽게 여겨본 적이 없다”면서 “러시아 외교부는 내 집이자 가족이지만 이유 없이 피만 흘리는 전쟁에 더는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을 참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직자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눠서 지고 싶지 않다”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 지도부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이 전쟁을 구상한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한다. 영원히 권좌에 앉아 궁전에서 살아가고, 러시아 해군 전체에 필적할 만한 규모의 요트를 타고 항해하고, 제한 없는 권력과 완전한 면책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썼다.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에 대해선 “전문적이고 교육받은 지식인에서 벗어나 분쟁을 일으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비판했다.
본다레프 고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도 문제 삼았다. 그는 “현재 러시아 외교부는 외교를 하지 않고 선동, 거짓말, 증오에 주력하고 있다”며 외교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공모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러시아 대표부 상급자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를 수차례 제기했지만 파문을 일으키지 말고 함구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보복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만약 내가 기소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 뒤를 따르고 싶어도 따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베테랑 외교관이 대외적인 비난 성명과 함께 사표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현지매체 코메르산트도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된 뒤 사임한 외교관들은 있지만 이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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