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유한계급의 과시성 예술후원이 타인의 꿈 이뤄줘

정소람 입력 2022. 5.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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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작은아씨들 (下)

따뜻한 후원에도 네 자매는 모두 꿈을 이루진 못한다. 메그는 배우를 포기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로리의 과외교사와 결혼하는 쪽을 택한다. 에이미는 야심 차게 오른 유학길에서 ‘천재’들을 만나며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는 부잣집 청년의 청혼을 받아주기 직전 우연히 로리와 다시 조우하며 진짜 사랑이 누군지 깨닫는다. 조에게 거절당한 뒤 한참을 방황하던 로리도 에이미에게 마음을 정착한다. 둘은 부부가 되기로 한다.

자신의 힘으로 꿈에 가까워진 건 조가 유일했다. 그는 로리의 고백을 거부하고, 가족의 품을 떠나 미국 뉴욕에서 작가로 데뷔한다. 그곳에서 눈길이 가는 유학생 프리드리히도 만난다.

가족이 다시 만난 건 베스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던 베스는 당시 유행병이었던 성홍열을 앓는다. 전쟁터로 떠났던 아버지까지 돌아오면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지만, 결국 베스는 세상을 등지고 만다. 가족은 서로를 다독이며 일상을 되찾는다. 조를 제외한 모두에겐 곁에 반려자가 있다.

조도 제 짝을 찾는다. 프리드리히가 조를 만나러 왔다가 돌아간 날, 평소와는 다른 조의 태도에 가족들은 외친다. “그게 바로 사랑이야. 놓치지 마!” 조는 프리드리히가 떠나는 기차역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먼저 고백한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네 자매의 인생 이야기가 곧 조의 소설 줄거리가 된다. 진심이 담긴 역작이지만,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는 이를 대중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다. 초기의 막대한 고정비용을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출판을 비롯한 음악, 영화, 방송 등 대부분의 예술은 기업을 통해 전파된다. 대신 개인은 무형의 재산권인 저작권을 갖고, 기업은 개인에게 이에 대한 비용을 준다. 이 구조는 플랫폼만 다양화됐을 뿐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다. 조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는 원고를 회사 소유로 바꾸고 싶어하지만, 영리한 조는 저작권을 지켜낸다. 무형의 재산권인 지식재산권을 인식한 것이다. 단 조건이 걸렸다. “주인공(조)이 결혼하지 않으면 ‘해피 엔딩’이 아니니, 결혼하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라”는 것. ‘비용’을 투자하는 출판사로서는 당시 기준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해 수익을 높이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는 조도 다른 자매들처럼 결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조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남편인 프리드리히와 짝지어 다른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평화롭게 식사한다. 그러나 감독은 이를 조의 소설 속 엔딩처럼 처리한다. 실제 조의 선택을 ‘열린 결말’로 남겨 둔 셈이다. 만약 조가 현재를 살고 있었다면 어떨까. 유한계급도, 미디어의 독점도 흐릿해진 세상 속에서 낸 소설의 결말은 영화 속 그의 대사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차라리 자유로운 독신이 되어서, 스스로 노를 저어 나가겠어요.”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 걸음 더

영화 배경이 된 1860년대 미국은 북부와 남부가 각기 다른 산업 구조를 갖고 있었다. 북부는 신흥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산업화를 진행했고, 남부는 대규모 농장과 노예를 소유한 귀족 중심의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노예 제도는 목화와 담배 농장 운영을 위한 기반이었다. 남부에서 노예 해방에 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관세였다. 수출입 물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모릴 관세법’을 계기로 남부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남부가 내는 세금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보면 1791년부터 1845년까지 남부가 낸 관세는 7억1000만달러였지만 북부가 낸 관세는 2억1000만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관세로 거둬들인 연방 예산은 북부에 배정된 비중이 네 배가량 많았다. 남부는 관세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북은 4년에 걸쳐 치열하게 싸웠고, 남부의 패배로 끝을 내렸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 아버지는 북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 덕에 승전고를 울리고 무사히 돌아온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작은 아씨들’은 조금 더 행복한 유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시네마노믹스는 이번주로 연재를 마칩니다.

 NIE 포인트

1. 기업의 예술인 후원에 대한 생각을 토론해보자.

2.《작은 아씨들》의 원작 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써보자.

3. 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에 대해 학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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