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특집] 삭힌 홍어의 원류, 영산도를 아십니까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신안군청 2022. 5. 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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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도에서 바라본 흑산도. 직선거리로 3km. 흑산도에서 영산도는 매일 1회 운항하는 도선으로 건너간다.
삭힌 홍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그 원초적이고도 그로테스크한 향기는 ‘음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형이상학적인 생각까지 들게 할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의 흐름 저편에서부터 발효된 홍어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거역하기 힘든 이 과정은 맹숭맹숭한 평양냉면 육수를 처음 접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양냉면 마니아로 변해가는 과정과 닮았다.

그런데 홍어는 도대체 왜 삭혀 먹을까? 정작 홍어의 성지라는 흑산도에서는 잡은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영산도는 국립공원공단에 의해서 다도해상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돼 마을 곳곳이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영산강, 영산포 이름의 유래
고려 말 혼란기를 틈타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과 섬에 왜구 침입이 잦았다. 공민왕 12년(1363년)에는 신안 영산도에까지 난입했다. 영산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오늘날의 나주 영산포 자리에 정착했다. 시간이 흘러 이 지역이 바다와 내륙을 잇는 뱃길과 포구로 발전하면서 포구 이름도 영산포가 됐고 강 이름도 영산강이 됐다고 한다. 결국 남도문화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영산강은 흑산도에 붙은 작은 섬 영산도와 적지않은 관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영산폐현 : 나주의 남쪽 10리에 있어,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로 옮겨 살았기에 영산현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때묻지 않은 영산도는 바다낚시 숨은 명소다.

영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가득 실은 배가 많이 들어가게 되면서 나주 영산포에 홍어 거리가 생기게 됐다. 영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돛단배에 싣고 가면 나주 영산포까지 뱃길로 열흘이 족히 걸렸다. 그동안 홍어가 자연 발효돼 삭힌 홍어가 됐고, 그때부터 영산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삭힌 홍어를 찾는 이들이 늘게 됐다는 것이다.

섬을 찾는 탐방객들을 위한 바비큐시설.
외지인 수를 제한하는 무공해 섬
영산도는 흑산도 동남쪽 작은 섬이다. 흑산도에서 직선거리로 3km. 섬에 사는 사람은 20여 가구에 불과하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2시간 배를 탄 후에 예리항에서 하루 1번만 운항하는 도선으로 갈아타고 1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목포에서 흑산도를 거쳐 배로 2시간여를 가야 만날 수 있는 영산도는 다른 섬과 달리 섬에 들어오는 외지인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입도는 물론, 숙식도 예약해야 한다. 식사도 오로지 섬에서 나는 해산물만 제공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 도선이 왕복하는 이 은둔의 섬에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제한적 요소들이다.
영산도는 서해 다른 지역과 달리 맑고 푸른 바닷물을 자랑한다.

지난 1970년대 100여 가구 500명에 육박했던 섬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몇 명 남지 않은 섬주민들도 대부분 70대. 무인도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섬사람들은 섬을 존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다도해상국립공원 안에 섬을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국립공원이 되면 개발행위 등 재산권 행사가 제한돼 반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영산도의 발상은 달랐다.

영산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초가집.

청정한 영산도의 자연과 고유한 생활방식에서 기회를 본 것이다.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한 결정은 이제 하나둘씩 결실을 거두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영산도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인심을 찾는 관광객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멸종위기 2급 석곡. 난초목 난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바위나 죽은 나무 줄기에 붙어서 자란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쓰는데, 해열·진통 작용이 있으며 백내장에 효과가 있고 건위제·강장제로 사용한다.

입도객 제한과 숙식을 예약해야 하는 등 접근하기 불편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영산도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뭍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누구든 영산도를 찾는 사람들은 주말과 성수기에도 붐비지 않고 한적한 웰빙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영산도의 기암괴석 ‘석주대문’. 우리나라의 코끼리를 닮은 바위 중에서 가장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코끼리’
영산도는 유네스코생물권 보전지역으로 파란 바다와 어우러진 후박나무숲이 인상적인 다도해국립공원의 명품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영산도에는 때묻지 않은 자연만큼이나 볼거리가 많다. 가장 유명한 ‘석주대문’은 30t급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코끼리 바위’다. 인근 홍도나 울릉도와 독도에도 코끼리 바위가 있지만 영산도에 비하면 아기 코끼리. 흑산도 비경으로 알려졌지만 영산도에 있다.
영산도에서 바라본 흑산도 방향 일몰 풍경.

이외에도 바위 구멍에서 코고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난다는 비성석굴, 폭포 물을 세 번 맞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전설이 있는 비류폭포, 부처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부처 바위도 영산도의 볼거리다. 영산도에서 운영하는 1시간 40분짜리 유람선 투어를 추천한다. 문의 010-4098-7335.

영산도 뗏배는 주민들이 해안가 수산물인 홍합, 거북손 등을 채취할 때 이용하는 무동력 배다.

영산도는 작은 섬이지만 아기자기한 트레킹 코스도 있다. 섬 아낙네가 산나물을 뜯으러 가던 길을 3km 길이의 탐방로로 조성한 뒤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골목길 1km을 더해 ‘영산 10리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트레킹 코스는 높이 184m의 깃대봉 정상을 밟은 후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홍어만 잘 썰어도 연봉 8,000만 원
손질하기 까다로운 홍어… ‘홍어썰기학교’에서 자격증 따세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줄리&줄리아’는 미국인들을 위한 정통 프랑스요리책을 쓴 줄리아 차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콧대높은 프랑스인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아가면서 씩씩하게 요리를 배우는 메릴 스트립의 열연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마지막 미션은 오리뼈 발라내기. 작은 칼 한 자루로 능숙하게 오리뼈를 발라내야 한 사람의 프랑스 셰프로 인정받는다.
홍어 또한 살을 발라내는 데 프랑스 오리 요리 못지않은 공이 든다. 다른 어종과 달리 손질 과정에서 물리적인 힘이 많이 필요하다. 부위별 손질과 규격에 맞춘 칼질, 배열, 포장 등이 까다로워서 전문가도 한 마리 손질하는 데 40여 분이 걸리고, 노하우가 없는 사람들은 2~3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만큼 수익도 크다. 홍어 썰기 비용은 마리당 2만~3만 원 수준으로, 연간 7,000만~8,000만 원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는 한 해 판매액이 200억 원에 달하지만 제대로 손질하는 인력이 부족해 공급에 차질을 빚어왔다. 이에 전남 신안군은 지난 2020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흑산 홍어썰기 기술자’를 민간자격증으로 등록했다. 이보다 앞서 흑산 홍어잡이가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홍어썰기 자격증은 ‘흑산 홍어썰기학교’ 교육생을 대상으로 발급된다. 초급·중급·고급·장인 과정으로 나뉘어 발급되는데 홍어 손질과 썰기, 포장 등을 평가한다. 초급은 홍어 수치 1번(6.2kg 이상)을 120분 이내에, 중급은 100분 이내, 고급은 홍어 암치 1번 (8.2kg 이상)을 80분 이내, 장인은 60분 이내에 살을 발라낸 후 썰어서 포장까지 완료해야 한다. 80점 이상이면 합격. 지난해에는 초급 자격증 14명을 배출했다.
교육생들의 수업료는 무료. 칼을 비롯해 도마, 앞치마, 위생장갑 등 모든 자재를 학교 측이 제공한다. 지난해 자격증 도입 소식이 알려지자 홍어썰기학교는 문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되고, 포털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는 등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올해에는 ‘홍어주낙 정리 기술자’ 민간자격증이 추가로 도입된다. 홍어주낙 정리는 홍어잡이에 쓰는 주낙을 정리하는 기술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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