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유로' 초읽기..전세계 뒤흔드는 强달러의 그림자

임정환 기자 2022. 5.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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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인덱스 20년만에 최고치…세계경제 ‘신음’

美, 올해 금리 0.75%P 올리자

글로벌 투자자본 ‘美 회귀현상’

달러 귀한 몸… 他통화 가치 하락

韓·英·印 등 너도나도 금리인상

화폐가치 올리려 逆환율전쟁도

신흥국은 달러 부채의 늪으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DXY)가 심상치 않다. 최근 달러 인덱스는 105 안팎에서 등락하며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쓰고 있다. 연초 대비 10%가량 오른 수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강한 긴축에 나선 점이 영향을 미쳤다. Fed는 지난 3월, 3년 3개월 만에 0.25%포인트 첫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5월에는 한 번에 0.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더불어 △Fed의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불거진 세계 경제 불확실성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가 가져올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강(强)달러가 나타나는 이유=글로벌 투자 자본은 ‘안전성’과 ‘수익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안전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추구되긴 어렵다. 통상 선진국 채권은 안전성이 높은 대신 금리(이자율)가 낮다. 반면 경제가 불안한 신흥국이나 전쟁 등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의 경우 안전성이 낮은 대신 금리가 높다.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국채 10년물 금리는 평소 8%를 오르내리다 전쟁 직후 19%를 웃돌기도 했다. 안전성이 낮아져 인기가 떨어지자 높은 금리를 제공해 투자자들을 유혹한 것이다.

미국이 최근처럼 기준금리를 올리면 어떨까. 미국 국채 10년물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성이 높은 자산으로 분류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기준금리를 반영한 국채 금리도 오르게 된다.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춘 자산이 높은 금리까지 제공하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말 1.5% 안팎이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최근 3%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투자 자본에 ‘치명적’ 매력이다. 실제 미국이 금리 인상을 치고 나가면서 독일(0.95%), 영국(1.7%), 일본(0.2%)보다도 훨씬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경우 전 세계 자본의 미국 회귀 현상이 나타난다. 전 세계 국가들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니 달러는 ‘귀한 몸’이 된다. 이는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다른 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80원을 넘나들며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달러는 중국 위안화 대비 연초보다 7% 상승했다. 일본 엔화 대비로는 12% 뛰어올라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조만간 20년 만에 ‘1달러=1유로’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통상 유로화는 달러화보다 비쌌다.

◇역(逆)환율 전쟁 발발?=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이를 두고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가장 큰 이유는 물가 때문이다. 자국의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물가가 급등하게 된다. 역시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터키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터키는 지난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달러당 8리라를 오르내리던 환율이 15리라까지 두 배 가까이 상승(가치 폭락)했다. 그 결과 터키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9.97%까지 뛰었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였다.

화폐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무역 흑자를 늘리는 일이다. 무역 흑자를 통해 달러벌이가 늘어나면 자국 외환시장에 달러가 늘어난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나 단기간에 무역 흑자를 늘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기준금리 인상을 선택한다. 미국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 글로벌 투자자금을 자국에 묶어두려는 목적이다. 최근 미국이 빅스텝에 나서자 국내에서 한·미 간 ‘금리역전’에 대한 우려가 나오며 한국도 빅스텝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달 초 기준금리를 11.75%에서 12.75%로 1.0%포인트 인상했다. 2017년 1월(13.0%) 이후 5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도 중앙은행도 2018년 8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4.0%에서 4.4%로 0.4%포인트 인상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는 2009년 2월(1.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을 ‘역환율 전쟁(reverse currency wars)’이라고 규정했다.

◇약(弱)한 고리…신음하는 신흥국=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가치 상승은 신흥국에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달러 표시 부채의 실질 가치가 상승한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들어 달러 가치가 급등하기 이전에도 저소득 국가의 약 60%가 이미 심각한 부채 부담을 안고 있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나, 엘살바도르, 튀니지와 같은 국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릭 리더 블랙록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강달러는 오늘날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가 매우 제한적인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자국 통화 가치 유지를 위해 선택한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 성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 성장에 독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부채가 많아 경기 부양을 위해 쓸 실탄이 바닥난 신흥국에 이 같은 문제는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제 브라질 경제부는 19일 발표한 경제 동향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성장률을 기존 2.1%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저소득 국가는 빚을 더 내 자국민을 위한 지출을 늘리거나, 민생고를 해결해야 할 예산을 긴축하고 사회적 갈등을 방조해야 하는 ‘불편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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