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헤어질 결심', 거장의 세공술 빛난 수사 멜로..8분간의 기립박수

김지혜 2022. 5. 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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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칸=프랑스) 김지혜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신작과 함께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6년 만에 귀환했다.

23일 오후 6시(현지 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공식 상영이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렸다.

칸영화제는 코로나19의 긴 수렁 끝에 3년 만에 정상 개최됐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도록 이렇다 할 화제작도, 문제작도 없이 조용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칸에 올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박찬욱이기에 그의 신작이 공개되는 날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박찬욱 감독의 본격 멜로 영화인 데다 중국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의 첫 만남으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8분간의 기립박수…'칸느 박'을 향한 영화인들의 존경

칸영화제에서 베일은 벗은 영화는 국내외 영화인들의 뜨거운 환호와 호평을 받았다. 상영 후 불이 켜지자마자 8분간의 기립박수가 터졌다. 칸에서의 기립박수는 이제 하나의 관례가 됐지만 '칸느 박'을 향한 영화인들의 존경과 예우는 진심이었다.

앞서 세 차례나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는 박찬욱 감독이지만 새로운 감격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칸에서의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는 가장 뜻깊고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예우가 이처럼 품격 있는 영화제는 없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뜨거운 기립박수 속에서 거듭 고개를 숙이며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8분간의 긴 기립박수를 받은 박찬욱 감독은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으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아 "이렇게 길고, 지루한, 구식의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어 박해일과 탕웨이, 각본을 쓴 정서경 작가, 미술을 담당한 류성희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며 공을 돌렸다.

◆ 거장의 세공술 빛난 수사 멜로…고전적 매력 물씬

'길고, 지루한, 구식의 영화'라는 박찬욱 감독의 워딩은 '거장의 겸손'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멜로와 수사물을 결합한 영화로 박찬욱 감독표 절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였다.

'헤어질 결심'은 스웨덴의 추리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영국 영화 '밀회'(1946), 한국 영화 '안개'(1967) 등 고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클래식한 형사물이기도 하다. 또한 안개 자욱한 도시 '무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3일간의 만남을 그렸던 소설 '무진기행'(김승옥 作, 1964)의 공간적 신비로움, 정서적 쓸쓸함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러 다양한 고전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감일 뿐 박찬욱의 인장이 강하게 박힌 수사멜로물이다.

영화의 구성은 공간의 이동에 따라 크게 2막으로 구성돼있다고 볼 수 있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으로 시작해 바다에서 마무리되는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산'과 '바다'로 챕터를 나누고 자막도 넣으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2시간 18분여의 러닝타임을 자랑하기에 챕터 구분을 할 경우 관객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형식적 구분은 하지 않았다.

변사 사건의 용의자가 된 미망인과 그를 수사하는 형사는 자칫 통속극의 익숙한 관계 설정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박찬욱이 누구인가. 서래와 해준이 관계를 형성하는 전반부, 사건의 반전이 드러나는 후반부까지 장면 장면 박찬욱의 의도와 메시지를 곱씹는 매력이 상당하다. 특히 한국어가 어색한 중국 여성이 한국인 형사의 수사를 받으면서 언어를 통해 교감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는 지점들이 흥미롭다.

박찬욱 영화의 무수한 상징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변사 사건이 발생하는 산부터, 안개가 자욱한 도시 이포,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라는 공간적 신비로움이 내내 살아있으며 개미, 자라 등의 이미지들도 장면 장면 임팩트를 선사한다.

'올드보이'(2004)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기에 박찬욱 감독을 보는 해외 평단의 평가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그러나 완벽한 미장센으로 장르 영화를 예술로 승격시킨 거장'이다. 그런 시선을 알면서도 박찬욱 감독은 "나는 늘 멜로 영화를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그가 말하는 멜로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감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말은 맞다. 특히 이번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본격 멜로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공식 상영 하루 전 열린 국내 언론과의 차담회에서 "사랑이라는 건 여러 양상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두 주인공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칭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 매혹의 탕웨이X예측불가 박해일

탕웨이와 박해일의 멜로 호흡도 기대 이상이었다. 용의자와 형사로 만나는 두 남녀는 영화 내내 서로를 향한 의심과 호기심, 사랑과 갈등의 미묘한 줄타기를 타며 매혹적인 멜로드라마를 펼친다.

'색,계'(2007)로 데뷔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한국 영화 '만추'(2011)로 연기력이 만개했던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에서 한층 무르익은 매력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탕웨이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했기에 '서래'라는 인물은 탕웨이의 백그라운드를 적극 반영해 만들었다. 대표적인 설정이 한국어가 어색한 중국인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탕웨이는 언어가 장벽이 되는 환경 속에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언어 장벽이 '해준'(박해일)과의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백치미에서 팜므파탈의 매력까지 보여준 탕웨이는 이 작품으로 대표작이 바뀔 것 같다.

박해일은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이미지와 그 이면에 존재할 것 같은 의외성을 극대화한 연기를 선보였다. 박찬욱 감독은 "깨끗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변태끼가 조금 있는 사람,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으나 무해한 형사를 떠올렸을 때 박해일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순애보에 최적화된 박해일을 사랑해온 대중도,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동물적 매력의 박해일을 애정 해온 대중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해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늘 신선한 비틀림 같은 것이 살아있고,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뻔하지 않은 캐릭터에서 탄생한 대사 특히 외국인이 한국어를 특수하게 흡수한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말의 묘한 뉘앙스 차이는 국내 관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한번 소비하고 끝나지 않는다. 장인이 비단천에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듯한 결과물로 관객에게 조금 다른 차원의 재미를 선사한다. 연출과 각본의 개성과 세련미는 물론이고 미술, 촬영, 음악에도 감독만의 취향이 한껏 드러난다.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류성희 감독의 미술은 이번에도 빛나며, 처음 호흡을 맞춘 김지용 촬영 감독의 카메라도 인상적이다.

정훈희의 '안개'를 메인 테마로 쓰다가 정훈희와 송창식이 함께 부르는 '안개'로 엔딩을 장식하고, 극의 분위기에 따라 클래식 음악과 창작곡을 적시적소에 배치한 음악도 '헤어질 결심'의 고전적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음악은 박찬욱 감독의 오랜 동지인 조영욱 감독이 담당했다.

칸에서 만난 '칸느 박'의 신작은 오랜만에 '시네마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는 극장에서 관람할 때 극대화될 수 있다. 또한 박찬욱의 영화가 늘 그러했듯 '헤어질 결심' 역시 관객에 의해 평가되고 해석될 때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오는 6월 29일 국내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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