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감수성 대장' 김호철 감독 "올 시즌, 작년보다 훨씬 힘들다"
(MHN스포츠 용인, 권수연 기자) "나 없어도 구단은 영원하니까 고민이 크지"
최근 용인 연수원에서 만난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은 마치 옆집 아저씨같은 편안함으로 또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배구공을 배에 꼭 끌어안은 모습과 소탈한 웃음에서 '버럭호철'의 면모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조송화 이탈 사건으로 내홍을 겪고 사령탑 자리가 여러번 바뀌었다. 흐트러진 분위기에 연패까지,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결국 김호철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지휘봉이 돌아갔다. 고심하던 김 감독은 '명문구단을 재건하겠다'는 각오로 여자배구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기업은행은 거짓말처럼 달라진 모습으로 기적같은 5연승을 거뒀다.
■ 물 들어올 때 가장 조심해야
김 감독에게 훈련이 없던 오프시즌에 대해 여유있게 물어보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자나깨나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릴 생각밖에 없었다.
선수단은 최근 본격적으로 산악훈련에 돌입했다. 김 감독은 오래 달리기와 산악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체력을 바로 잡아놓고 이후 볼을 가지고 하는 스피드 훈련에 돌입할 생각이라 밝혔다. "힘들겠지만 잘 좀 버텨줘야 한다"는 말이 덧붙었다.
김호철 감독은 1980년대, 당대 최고 리그였던 이탈리아리그에서 '황금의 손(Mani d'Oro)'으로 불렸던 세계적인 명세터 출신이다. 한 마디로 원조 '금손'이다. 이후에도 한국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며 여러 세터들을 지도해왔다.
그런 세터 출신이니 오래전부터 그의 배구를 봐왔던 팬들, 그리고 얼떨결에 주전세터를 맡아 성장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세터 김하경과의 서사가 특히 두드러진다.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은 조송화 사태로 등 돌렸던 팬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녹였다.
다만 김 감독은 이 점을 기뻐하면서도 다소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하경이랑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고 털어놓았다. 관심과 애정을 가장 많이 받을 때, 물 들어올때 가장 조심해야한다고 거듭 말한 그는 "사실 김호철 감독이라는 사람이 와서 주전이 된 (김)하경이를 키워서 완전히 성공하는 그런 스토리를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서사에 휩쓸리지 않고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센터 공백이 걱정...트레이드까지 고민
여자배구계에 첫 발을 딛은 후 노심초사 선수들을 키우는 그의 눈에 세터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김)하경이는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 작년에는 사실 급조된 주전으로 시합을 어떻게 할지만 걱정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갈 시기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시즌은 노력만 한다고 될게 아니다, 이제 그 단계를 떠나 코트 전체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공부를 해야하는 시기다, 아마 지난 시즌보다 훨씬 어려운 한 해가 될거다"라고 밝혔다.
'막내딸'로 불리는 이진에 대해서는 "타고난 탤런트 기질은 있지만 아직은 어려서 철없어보일 때도 있다, 다만 집중력은 요새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젠가 구단을 떠나지만 구단은 해체되지 않는 한 영원하다. 김 감독은 그가 없을 후일도 다져놓고 싶다. 그는 "일단 레프트에는 김주향, 육서영, 박민지가 있고 세터도 아직 (김)하경이가 어리다"며 "하지만 (김)희진이가 만일 은퇴하거나 더 좋은 조건에 다른 팀에 건너간다면 라이트에 대해서도 육성이 필요하다, 우린 특히 센터진이 부족하다, (김)수지가 빠지면 공백이 너무 큰데 이 부분에 대해선 트레이드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 버럭 호철? 실은 아침드라마보고 우는 '감성맨'
누구보다 엄격하고 군기 잡힌 80년대 체육계 중심에 섰던 그와 현역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나눴다. 껄껄 웃은 김호철 감독은 "딱 대학교 1학년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돼서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그땐 대표팀 뽑히면 그냥 다 좋은 줄 알았는데 나이 어리니까 훈련도 안 시켜주고, 뒤에서 맨날 박수만 치게하고 그게 열받아서 그냥 냅다 달아났다, 그때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친선경기 왔을때인데 그것도 안 나갔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호랑이같았던 선배들도 그런 김 감독의 화끈한 성격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이탈리아 리그에서 경기가 풀리지 않아 투덜거리던 동료선수의 엉덩이를 걷어찬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이처럼 '버럭 호철' 에서 '아빠 리더십'을 천명한 그에게 팬들은 '호요미(호철+귀요미)'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마스크 없었으면 못 얻을 별명"이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이어 "내가 원래 아침드라마 보고 우는 되게 감성적인 사람인데 여자배구팀을 맡으며 잊어버렸던 그런(감성적인) 부분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이 초반에 내가 여자팀을 맡는다니 말이 많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입국하고 자가격리하며 우리 팀 아이들을 연구하니 훨씬 더 수월하게,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근데 요새는 점점 감성적인 부분이 슬슬 없어지고 있다"고 재빨리 덧붙이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느냐'고 물었다. 김호철 감독은 "이젠 스타감독, 명장으로 눈에 띄는 감독보다는 선수들에게 좋은 것을 다 밀어주고, 선수들이 앞서게 해주는 조용한 서포터로 남고싶다"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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