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 짙은 그늘' 명품 플랫폼, 쿠팡 따라잡기 '아직'
시장 성장 지속에도 미래는 이커머스와 달라
엔데믹 이후 소비 트렌드 변화도 악재 떠올라
3대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트렌비·발란(머·트·발)의 지난해 실적이 악화됐다. 거래액과 매출이 성장했음에도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했다. 고성장 시장의 '대세'가 되기 위해 실적 악화를 감수하는 '이커머스식 출혈경쟁'과 유사한 모습이다. 실제로 이들 플랫폼은 대형 스타를 앞세운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더 많다. 명품 플랫폼은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과 다른 '전문몰(버티컬 플랫폼)'이다. 주력 소비자의 관심사는 품질·신뢰도다. 공산품과 달리 시장 주요 브랜드들이 독자 온라인 사업을 진행할 만한 지배력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들며 명품 구매 패턴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명품 플랫폼이 악재를 뛰어넘어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달리는 이유다.
명품 플랫폼의 '이커머스화'
지난해는 명품 플랫폼들의 '역대급 전성기'였다. 머·트·발 등 주요 플랫폼 모두 거래액 기록을 새롭게 썼다. 시장 1위 머스트잇의 지난해 거래액은 3257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트렌비는 3200억원, 발란은 315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명품 플랫폼 '빅 3'가 모두 거래액 3000억원을 넘긴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다.
거래액 성장과 함께 매출도 올랐다. 머스트잇의 지난해 매출은 20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66% 성장했다. 발란·트렌비의 매출 성장률은 머스트잇보다도 높았다. 발란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552억원이었다. 트렌비도 21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트렌비는 해외 자회사 6개의 매출을 합산하면 963억원의 연결 기준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형 성장과 달리 내실은 악화됐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1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머스트잇이 연간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1년 창립 후 최초의 일이다. 같은 기간 트렌비의 영업손실은 330억원, 발란의 영업손실은 185억원에 달했다. 시장 규모와 거래액, 매출 모두 성장하면서도 영업이익은 하락하는 이커머스식 출혈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경쟁에서 시작된 내실 악화
실제로 명품 플랫폼 시장은 이커머스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7475억원이었다. 5년 만에 38.2% 성장했다. 올해는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플랫폼 사용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머·트·발 3개 플랫폼의 지난 3월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는 전년 동기 대비 최소 3배에서 최대 7배 가량 늘었다.
시장의 성장 과정도 비슷하다. 명품 플랫폼 시장은 당초 백화점 등 채널의 이커머스 플랫폼과 머스트잇의 독무대였다. 경쟁은 2015년 발란, 2016년 트렌비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됐다. 여기에 2020년 터진 코로나19가 기름을 부었다.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명품이 이커머스 주요 상품이 됐다. 머·트·발은 이에 주목해 공격적인 '스타 마케팅'을 전개했다. 소비자를 끌어들여 규모를 빠르게 키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는 '양날의 검'이 됐다. 스타 마케팅은 거래액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었지만,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약 134억원의 광고선전비를 지출했다. 전년 대비 582.1%나 늘었다. 같은 기간 발란의 광고선전비는 450.6% 증가한 191억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증가 폭이 가장 작았던 트렌비조차 228.3%의 광고선전비 증가율을 기록했다. 시장 선점을 위한 마케팅 투자가 늘어난 만큼 영업이익 악화는 피할 수 없었다는 평가다.
명품 플랫폼, 규모 키우기 가능할까
머·트·발의 목표는 시장 장악이다. 현재 실적은 '계획된 적자'에 가깝고, 시장 장악 후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부정적 전망이 더 많다. 성장세가 비슷할 뿐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커머스의 메인 상품은 공산품·생필품이다. 이 시장 소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격과 배송 속도 등의 서비스다. 때문에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등이 충분히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패션·명품 소비자는 이런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크지 않다. '정품인증'을 비롯한 신뢰도에 보다 관심이 많다. 명품 플랫폼이 대체불가토큰(NFT) 기술을 활용한 보증서를 제공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등의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신뢰도를 해치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무신사는 최근 가품 티셔츠 판매 논란에 휘말렸다. 발란은 '네고왕' 할인 행사에 앞서 가격을 올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고스란히 명품 플랫폼의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명품 플랫폼이 더 성장하려면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핵심 브랜드를 입점시켜야 한다. 이들은 소비자보다 신뢰도에 더 예민하다. 루이비통이 보따리상의 재판매를 이유로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더불어 SSG닷컴·롯데온 등 백화점 기반 플랫폼이 명품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구매력·자금 여력이 다소 부족한 명품 플랫폼에게 이는 '현실적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는 불특정 다수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파는 만큼 시장 성장성이 높았고, 이를 기반 삼아 쿠팡 등 플랫폼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후 출혈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며 "명품 플랫폼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시장이 작아 '천정'도 명확하다고 봐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엔데믹으로 명품 이커머스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충성고객 유치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석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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