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강화도, 왕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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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문을 지나 왕의 집을 들러
왕의 뜰에 내려앉았다.
왕들의 자취를 따라 걸은
초여름의 강화도.
▶Course 왕의 길
고려 23대 왕 고종의 강화천도와 대몽항쟁의 길이자, 조선 25대 왕 철종이 왕위에 올라 도성 한양으로 향하던 길. 왕들의 역사를 담은 장소를 잇는 강화도의 도보 코스다. 강화산성 남문안길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고려궁지까지 이어지는 약 500m의 구간으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설레설레 걷기에 부침이 없다.
강화산성 남문→소창체험관→용흥궁→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고려궁지
●1st SPOT
남문의 서프라이즈
강화산성 남문
일찍부터 강화도가 여행객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적한 골목을 걷다 느닷없이 고아한 자태의 성문이 '짜잔' 하고 나타나는 일은 몇 번을 거듭해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강화산성 남문의 등장은 선물 같은 서프라이즈였다.
지금이야 오후의 낮잠처럼 나른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이래 봬도 조선시대엔 강화산성 내성의 4대문 중 강화읍 중심에서 가장 가깝고 사람의 통행도 제일 많았던 문이다. 문루 위엔 시간을 알리는 강화동종이 걸려 있었고 남문 주위로는 시장이 형성됐었다고. 그렇게 강화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남문은 세월이 흘러 동네 주민들에게 곁을 내어 주는 공원이 됐다. 강화도의 아이들은 남문 앞에서 자전거 타고 연을 날리며 여름을 난다. 햇살이 뜨겁지 않은 날엔 성곽을 따라 난 계단을 오르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문의 모습이 또 새롭다.
●2nd SPOT
소창이 뭔데요?
소창체험관
'직물의 도시'는 1970년대까지만 통용됐던 강화도의 별칭이지만,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강화도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으론 조양방직이 있겠고, 소창체험관도 그중 하나다. 인견 공장이 카페로 변모한 곳이 조양방직이라면, 한옥과 염색공장이었던 옛 평화직물터를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이 소창체험관이다.
과거 번성했던 강화 직물 산업의 역사와 강화군 전통 산업인 소창(기저귀나 행주로 사용하던 면직물)에 대한 스토리는 체험관 내부를 걷기만 해도 자연히 와 닿게 된다. 소창 짜는 과정, 전통 베틀, 기계 직조기를 관람할 수 있는 건 물론, 지난해 문을 연 '강화소창 기념품 전시관'에선 한복, 수건, 스카프 등 소창으로 만든 제품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의외로 야외에 '와, 제법인걸?' 싶을 정도의 포토존들이 숨어 있으니, 카메라 용량은 넉넉히 비워 두고 방문할 것.
●3rd SPOT
왕의 어린 시절을 엿보다
용흥궁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만큼 흥미로운 곳이 또 있을까. 슥 둘러보기만 해도 영사기가 돌아가듯 자동으로 160여 년 전의 어느 날들이 떠오르는 공간 말이다. 용흥궁은 분명 그런 곳이다.
조선 25대 왕 철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19살까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처음엔 소박한 초가집이었지만 철종이 즉위한 뒤 강화유수가 큰 기와집을 지어 확장하고, 용이 흥하게 되었단 의미로 '용흥궁(龍興宮)'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팔작지붕을 가진 사랑채, 아담한 마당, 옆문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비와 비각까지도 모난 데 없이 편안하다. 걷는 내내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철종의 어린 시절이 머릿속에 자동재생된다. 근엄해 보이기만 한 그도 한때는 어머니의 젖을 물고 앙앙 울어대며 마당을 뛰놀았겠지. 역사적 공간의 의미란 이런 소소한 상상력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이다.
●4th SPOT
절 아니고 성당입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에서 담장 너머로 빼꼼 건너다보면 바로 맞은편 언덕에 한옥집 하나가 서 있다. 1900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공회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사찰이라도 있어야 할 비주얼인데 성당이라니. 외관과 이름이 매치가 잘 안 되는데, 조화와 융합은 처음엔 늘 당혹스러운 법. 낯설다는 첫인상은 성당 내외부를 번갈아 둘러보면 금세 옅어지고 만다. 내부 공간은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부 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된 구릉지 불교 사찰 건축의 형태를 구현했다.
동서양의 과감한 조합은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현존하는 한옥 성당 건물 중 가장 오래됐지만, 아직도 매주 일요일마다 주민들이 예배를 드리러 이곳을 찾는다고. 참, 앞면만 보고 간다면 섭할 일이다. 성당 뒤편에 용흥궁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뷰 포인트가 있다.
●5th SPOT
소실과 재건의 역사
고려궁지
유적지는 대개 파괴와 재건의 역사를 반복한다. 고려궁지도 예외는 아니다. 고종 19년에 고려는 대몽항쟁을 위해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했다. 이후 몽골과 화친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은 모두 파괴됐다.
조선시대에는 고려궁지에 왕이 행차시 머무는 행궁, 이방청 등이 건립됐지만 병자호란과 병인양요를 겪으며 대부분 소실됐다. 지금은 오늘날 군청 역할을 했던 '강화유수부 동헌'과 왕립 도서관의 부속 도서관이었던 '외규장각' 등만 복원되어 있는 상태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결코 외로운 곳은 아니다. 초여름이면 넉넉한 나무 그늘과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고려궁지를 메운다. 텅 비어 있지만 가득 채워져 있는 곳이랄까. 비록 복제품이지만 조선시대 강화산성 남문에서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된 강화동종도 이곳에 있다(원본은 강화역사관에 있다). 그러니까, 남문에서 시작해 남문의 흔적으로 끝나는 순환 코스가 '왕의 길'인 셈. 4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면 왕의 길 탐방에 비로소 마침표가 찍힌다.
▶왕의 길 2배로 즐기기!
알뜰한 여행자를 위한 강화 고려도성 여행 꿀팁
뚜벅뚜벅, 원스톱 강화 여행
강화 원도심 도보해설 투어
짧은 시간 내에 강화도의 역사, 산업, 종교를 샅샅이 알고 싶은 욕심 많은 여행자에겐 '강화 원도심 도보해설 투어'가 딱이다. 과거 강화도 직물 산업의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심도직물터부터 강화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한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까지 알차게 돌아볼 수 있다. 여기에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의 풍부한 해설까지 더해진다. 네이버에 '용흥궁 해설사 대기소'를 검색하면 사전예약할 수 있다.
도장 찍고 농특산물 GET!
강화 원도심 모바일 스탬프 투어
강화읍의 대표 명소들을 방문하고 모바일 스탬프로 방문을 인증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 웹 로그인 후 총 6개소(고려궁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소창체험관, 강화산성 남문, 실감형 미래체험관, 조양방직)에 도착해 모바일 화면에 해당 인증장소 사진을 터치하면 스탬프 인증은 끝. 이후 지역 내에서 1만원 이상 소비하면 1만원 상당의 강화 농특산물을 한옥관광안내소에서 바로 받아갈 수 있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공동기획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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