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4월 가입 신청" 무리수에 요원해진 CPTPP..尹정부, 농민 달래기 진땀

세종=전준범 기자 2022. 5.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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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전 부총리 임기 말 "2022년 4월 CPTPP 가입 신청"
뿔난 농어민 단체 "그럴거면 대화하는 척 왜 하느냐"
尹정부 들어 대화 일부 이뤄졌으나.."여전히 난항 중"
추경호 부총리 "충분히 보상하면서 진행한다는 원칙"
우리나라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반대하는 농어민 단체 회원들이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3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석해 가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올해 4월 중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추진 일정이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지연되고 있다. 문 정부의 약속은 공수표가 된 지 오래다. 관가에서는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연내 가입 신청도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CPTPP 참여에 반대해온 농·수·축산업계와 이견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이 상황과 관련해 정부와 농업계 등에서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책임론이 쏟아진다. CPTPP 관련 경제부처들이 물밑에서 농·수·축산업계와 접촉하며 대화를 시도 중이었는데, 홍 전 부총리가 느닷없이 가입 신청 시기를 2022년 4월로 못 박았다는 이유에서다. 홍 부총리의 일방적인 ‘4월 통보’에 뿔난 농어민들은 “일정 다 정해놓고 대화는 왜 하느냐”며 돌아섰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공식 참여한 윤석열 정부는 CPTPP 가입을 위한 국내 여론 조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농·수·축산업계 설득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前) 정부의 무책임한 임기 말 치적 챙기기가 한국의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 가입 스케줄을 크게 늦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 연합뉴스

◇ 농어민 단체 文정부에 “떠날 때 되니 갑자기 일하는 척”

24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수산업계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 정부와 소통 채널을 차단했던 수산업계가 새 정부와는 다시 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시위하러 왔다가 (정부와) 잠시 대화한 것일 뿐 처음부터 그들이 대화하려고 온 건 아니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부와 농민 간 대화에 이목이 쏠리는 건 문 정부 임기 막바지에 양측 관계가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홍남기 전 부총리는 작년 12월 27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내년(2022년) 4월 중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문 정부는 CPTPP 가입의 당위성을 적극 소개하며 여론 조성에 착수했고, 정권 끝 무렵이던 올해 3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의 CPTPP 가입 신청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 공청회는 현장을 장악한 농어민 단체의 거친 항의에 아수라장이 됐고, 행사는 1시간 만에 조기 종료됐다. 당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9개 농어민 단체로 구성된 ‘CPTPP 저지 한국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곧 끝날 정부가 임기 내내 가만히 있더니 떠날 때가 되자 갑자기 일하는 시늉을 한다”며 “더는 이 정부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범정부 차원에서 올해 4월 중 CPTPP 가입 신청을 목표로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일정을 홍 전 부총리가 굳이 대외적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그랬을 텐데,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문 정부와 모든 소통 채널을 차단했던 농민단체 대표들은 새 정부 출범 전이던 지난달 18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와 만났다. 이를 두고 양측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CPTPP 가입과 관련해 농어민 입장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모든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단계”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윤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공식 참여했다. / 연합뉴스

◇ 추 부총리 “농어민 충분히 보상”…연내 가입 신청은 미지수

윤석열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CPTPP 가입 신청을 위한 국내 이해관계자 설득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CPTPP 가입 추진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무역 질서에 들어가면 우리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했다.

CPTPP는 일본·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가 참여한 초대형 FTA다.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블록을 지향했던 TPP에서 탈퇴하자 2018년 일본을 중심으로 나머지 11개 국가가 출범시킨 경제 협력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CPTPP에 참여한 11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1조2000억달러로, 전 세계 GDP의 12.8%에 해당한다. 무역 규모는 5조7000억달러로 글로벌 무역액의 15.2%를 차지한다. 한국 수출액에서 CPTPP 11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2%다.

추 부총리는 CPTPP 가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피해 분야가 생기고, 특히 농·어업 분야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 또 피해가 실제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면서 진행해야 한다”며 “그걸 간과하고 그냥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원칙하에 검토 중”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가 CPTPP 가입 필요성과 농어민과 대화 의지를 드러냈지만, 새 정부가 연내 CPTPP 가입 신청서 제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있다. 윤 정부가 미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인 IPEF에 더 공을 들인다는 사실도 CPTPP 가입 지연 가능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조약법에 따라 CPTPP 가입 추진 계획을 국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6월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전체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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