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지옥 프랑스에도 없는 개미 거래세..한국에만 왜

이지현 2022. 5.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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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
佛 이중과세지만 개인 거래세 효과 '미미'
조세원칙 훼손 등 英 양도세 도입 논의 거세
코로나19, 신냉전, 기후변화 등이 몰고 온 글로벌 대격변기. 혼탁해지는 세계질서 속에 대한민국은 거센 풍랑을 만난 것처럼 혼돈과 위기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빠진 형국입니다. 그간 짓밟힌 기업가 정신, 손상된 국격의 복원을 위해 안으로부터 개혁이 절실한 때입니다. 20대 대통령 취임을 앞둔 윤석열 당선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데일리가 한발 먼저 나섭니다. 정치·경제·사회 등 세계 주요국가에서 통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아 우리 사회와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증권 양도세가 자리잡고 있어요. 한국만 역행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초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주식양도세(금융투자소득세) 부과를 윤석열 정부가 백지화하는 방침을 세우자 증권시장 전문가는 이같이 반응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와 프랑스에서는 상장 주식에 대해 양도세와 거래세를 모두 부과하고 있다. 다만 거래세 비중은 낮고 양도세 비중이 크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아예 양도세만 부과한다. 우리나라만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 증권업계 전문가는 “프랑스엔 주식 양도세와 거래세가 모두 살아 있지만, 개인들의 경우 거래세를 기본적으로 안 낸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10억유로(1조3449억원) 이상의 거래 규모가 큰 금융회사들만 거래세를 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과세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부과’다.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의 손실에까지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소득에 부과하는 양도세만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사정은 다르다. ‘거래가 있는 곳에 세금 부과’가 원칙으로 자리잡으며 수익·손실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증권 거래자에게 세금을 물리고 있다. 조세 저항이 거의 없어 손쉽게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금 지옥’으로 불리는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의 거래세와 유사한 개념의 0.5%의 인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수년 전부터 인지세 폐지, 양도세 부과 요구가 일고 있다. 이 관계자는 “거래세를 폐지하면 세수가 줄어드니 정부 입장에선 쉽게 수용할 수 없지만 (거래세의 경우) 거래를 할 때 세금을 걷는 게 편하다는 점 외엔 이점이 전혀 없는 제도”라며 “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로 전환하는 게 글로벌 조세 트렌드에 맞다”고 짚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못된 금융자본이 세상을 망친다’는 규탄이 일며 금융거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가 주장한 투기성 거래에 세금을 거둬들여 빈곤국을 지원하자는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 ‘토빈세(Tobin tax)’라는 이름의 금융거래세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유럽국가들의 재정난에 직면해 토빈세 도입을 대환영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한쪽에서 세금을 물리기 시작하면 자본이 세금을 물리지 않는 쪽으로 몰릴 수 있을 거라고 우려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찬반이 갈리고 있다. 양도세 폐지를 찬성하는 이들은 연말마다 양도세 회피 물량이 쏟아지며 증시의 변동성을 높이는데, 이같은 상황이 사라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부자 감세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초고액 주식보유자에게만 국내 상장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초고액 주식보유자는 개별 종목 주식을 100억원 이상 보유했을 때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실상 대기업 대주주 외에 다른 큰손 투자자에게는 조세 면죄부를 준 것이다.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는 “엄청난 대주주와 기업들만 과세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사실 부자감세다. 조세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조세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갈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른 시장 전문가는 “세금 부과의 경우 국가별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며 “다른 나라의 사례를 무조건 차용하기 보다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수정 도입하면서 관련 진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의 합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학 교수도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는 게 조세 원칙에 맞다”며 “세금을 걷지 않으면 모두가 좋겠지만, 국가 재정이 텅 비게 될 거다. 충분한 합의 과정을 통해 과세 형평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있게 과세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ljh42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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