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상처투성이 금강송..지금도 살아있을까
낙동정맥이 지나는 경북의 울진, 영덕, 영양군 등의 오지산간은 5백년이 넘은 아름드리 금강송의 고향입니다. 조선시대부터 강원도와 경상북도 주요 금강송 산지가 황장금산(黃腸禁山)으로 지정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하는 금표를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금강송을 한 그루만 허가 없이 베어도 곤장 백대에 삼년동안 옥에 가둘 정도로 죄를 엄하게 다스렸다고 합니다.
지난 3월 발생한 역대급 울진 산불은 금강송 숲의 코앞까지 근접해서 소방당국과 민관군이 며칠 밤을 새워 사투를 벌인 끝에 불길이 잡혔습니다. 특히 소방관들은 오랜 사투끝에 거대한 불길이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삼키는 것을 겨우 막았습니다. 불길이 계곡 하나만 더 건넜어도 국내 유일의 육종보호림인 울진 금강송 숲이 사라질 뻔했습니다.
필자는 낙동정맥이 지나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의 애미랑재에서 칠보산을 거쳐 한티재까지 산행길에서 금강송의 수난사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수 백 년 수령의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밑둥에 V자 형태의 칼자국들이 수없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울진, 영덕의 금강송에 흠집이 가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입니다. 군수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이 금강송에 홈을 내 채취한 송진을 공출해가기 시작한 흔적입니다. 이렇게 모아진 송진은 가공을 거쳐 군용항공기의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970년대 초 경제개발의 명목 하에 다시 송진 채취가 허가되었습니다. 1976년 송진 채취가 다시 금지될 때까지 약 3년 동안 금강송의 훼손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낙동정맥 마루금에서 볼 수 있는 금강송의 생채기들은 최소 50년이나 80년이 넘은 흔적들입니다.
가슴 아픈 기록은 또 있습니다. 금강송은 강송, 또는 황장목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춘양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금강송이 춘양목으로 불린 이유는 일제시대 울진, 봉화, 영덕 등지에서 벌목한 금강송들이 춘양역을 통해 반출되었고 춘양역에서 실려온 금강송의 품질이 으뜸이어서 춘양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에 의해 수탈당하며 깊은 상처를 간직한 동해안의 금강송들이 화마를 피해 건재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최근 낙동정맥 탐방객의 사진으로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금강송이 부디 아름다운 소나무로 오래도록 살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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