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는 어떻게 경기지사 선거의 뇌관이 되었나?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문제가 경기도지사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 후보가 지향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건축 연한이 30년을 넘기기 시작한 1기 신도시의 재건축·리모델링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특별법을 비롯한 여러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공약의 방향과 결론은 같지만 정치적 논쟁은 격렬하게 뒤따른다.
논란이 이토록 커진 것은 1기 신도시의 특성 때문이다.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1기 신도시는 수용 인구만 110만여 명, 주택 보급량 29만여 호에 이른다. 주택을 단기간에 대량 공급한 첫 사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부천시 중동에 규격이 비슷한 아파트를 대량으로 건설했다. 이후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광역시의 신시가지·신도시가 1기 신도시를 계승·발전하는 형태로 증가했다.
문제는 동일 시점에 대규모 인구가 유입되었고, 비슷한 시점에 함께 노후화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6만여 가구에 이르는 1기 신도시의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향후 2026년 25만 가구를 넘어설 예정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는 물리적 안전성만 놓고 보았을 때 50년 넘게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실거주자 처지에서 직면하는 아파트의 노후는 건물이 무너질 위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1기 신도시 아파트도 콘크리트 구조에 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력벽 구조(기둥 대신 벽이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생활 불편이다. 1990년대에 지어진 한국식 아파트는 콘크리트에 매립해둔 배관·배선을 교체하거나 고치는 게 어렵다. 녹슨 배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하수구가 막히거나 악취 문제로 고통받는 거주민들이 상당수다.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나 주요 골조만 남긴 채 증축하는 리모델링이 ‘단순 배관 수리’보다 저렴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족한 주차시설 등도 거주 불편 요인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왜 하필 1기 신도시 다섯 지역만 ‘콕 집어’ 선거의 쟁점이 된 것일까? 정치가 ‘때’를 맞춰 이들 지역의 현안을 끄집어 올렸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이 한창이던 지난 1월6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주택 공급 대책을 위한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을 발표했다. 토지 용도변경과 종 상향을 통해 재건축 시 용적률을 올려주면 이들 지역에서 신규 주택 10만 호를 추가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공약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당시 대선후보들은 공급 폭탄을 통해 집값을 잡겠다며 경쟁적으로 아파트 공급 대책을 내놓았는데, 1기 신도시를 활용하면 신규 토지를 확보하지 않고도 공급 물량을 내세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1기 신도시 지역은 분당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국민의힘이 이들 지역의 표심을 흔들 방안으로 1기 신도시 재정비 이슈를 먼저 부각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때마침 2022년은 1기 신도시 아파트가 건축 연한 30년을 넘기 시작하는 해다. 정치적 노림수가 작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묘한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1기 신도시 전 지역의 용적률이 최대 500%까지 확대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이미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169~226%에 달한다. 현행법상 2종 주거지역의 최대 용적률은 250%인데, 1기 신도시 아파트 다수가 이미 허용 가능한 용적률을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한마디로 이미 ‘법에서 허용하는 만큼 집이 빽빽이 들어찬’ 셈이다.
왜 1기 신도시만 특혜를 주느냐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종 상향’을 한다면 3종 주거지역 최대 용적률인 300%까지 아파트를 재건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투기 세력은 ‘1기 신도시에서도 역세권을 준주거지역으로 바꿀 경우 서울 강남 빌딩숲처럼 500%까지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장밋빛 희망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직후 투기 심리가 일어나면서 일부 1기 신도시 지역의 집값이 들썩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민들의 바람과 달리 당선 이후 윤석열 인수위는 ‘500% 희망’에 선을 그었다. 5월1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기반시설과 학교, 공원 등 생활 인프라까지 들어가 있어야 하고 광역교통망 등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또 다른 난개발이 될 수 있다”라며 1기 신도시를 당장 한꺼번에 재개발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용적률 상향에 대해서도 “어느 특정 지역에 (용적률 특혜를) 통으로 500% 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속도조절 메시지도 나왔다. 4월25일 인수위는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는 부동산 태스크포스(TF)가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는데, 당시 이 메시지가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론이 들썩이자, 윤석열 당시 당선자는 5월2일 경기도 고양시 GTX 공사 현장을 찾아 “1기 신도시의 종합적 도시 재정비 문제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언론에 잘못된 보도(공약 후퇴 논란)가 난 것에 대해 절대 오해하실 일이 없다. 선거 때 약속드린 것은 반드시 지킨다”라며 메시지 혼선을 직접 수습하려 했다. 마침 이날 현장 방문에는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도 대동했다.
대통령은 ‘약속을 지킨다’고 말하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한꺼번에는 아니다’고 말한다. 온도차가 보이는 메시지는 곧바로 야당의 공격 대상이 된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지속적으로 1기 신도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5월9일 김동연-김은혜 후보 간 토론에서도 김동연 후보는 “인수위에서 1기 신도시 개발에 대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세에 놓인 김은혜 후보는 “제가 이미 2년 전에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했고 국토위에 들어갔으나 민주당 의원이 반대했다. 4년 동안 민주당이 90% 이상 지방권력을 장악했지만 진전이 없었다”라며 민주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방향’은 두 후보가 일치하지만, 정치적 프레임과 정치적 책임을 두고 논박이 계속되는 식이다.
선거판에서 불거지는 ‘공방’만 놓고 보면, 마치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여야 모두의 지지를 받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1기 신도시 재정비가 순탄하게 흘러가긴 쉽지 않다. 몇 가지 걸림돌이 있다.
당장 ‘왜 1기 신도시만 특혜를 받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기 신도시 다섯 지역이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공동주택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지은 아파트는 이들 지역 외에도 넘쳐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전체 아파트 가구 수는 1128만7000호인데 이 중 30년 넘은 아파트가 112만여 호로 9.6%에 달했다. 20년 넘은 아파트 역시 497만여 호로 전체 아파트 대비 42.7% 수준이다. 2029년이면 전국 아파트의 절반가량이 30년 넘은 노후 아파트가 된다는 의미다. 낡은 아파트는 1기 신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리모델링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민간 정비사업이 용이하도록 규제를 풀되, 노후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1기 신도시에는 추가적으로 특혜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의 신시가지(신도시) 역시 ‘우리도 신도시인데 어째서 배제되느냐’는 불만을 제기한다. 인천 연수지구, 부산 해운대, 대전 둔산신도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은 1기 신도시와 비슷한 시기에 도시를 개발하고 대규모 인구를 수용했지만, 단지 1기 신도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 혜택을 누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1기 신도시보다 먼저 노후화된 서울 목동·여의도·강남 일대에서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1기 신도시 특별법의 수혜 대상을 늘리려는 시도도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천 연수갑 지역구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27일 ‘노후 신도시 재생 및 개선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이미 3월14일,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태였다. 김병욱 의원의 원안에는 특별법의 대상을 1기 신도시 5개 지역과 2기 신도시 12개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박찬대 의원의 법안에는 ‘지방 거점 신도시 및 택지지구(인천 연수구, 대전 둔산구, 부산 해운대구, 광주 상무지구, 대구 수성구)’를 추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선거 이후 박찬대 의원과 같은 시도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우리 지역구도 특별법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누가 선거에서 이기든,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은 특혜 시비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법이 신속하게 처리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빠른 성장과 획일화된 공급의 부작용
1기 신도시 지역을 재정비하려면 ‘대규모 이주’가 필요하다. 순차적으로 재정비를 하더라도 수만 가구의 이주는 불가피하다. 윤석열 정부는 1기 신도시 지역과 인접한 3기 신도시에 이주 전용 단지를 만들고, 이곳으로 재정비 기간(재개발·리모델링 공사 기간)에 인구를 분산시키는 안을 고민 중이다. 그러나 애초에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 중인 3기 신도시의 공급 물량이 1기 신도시의 재정비 사업에 의해 잠식될 우려도 있다. 3기 신도시에 이주 전용 단지를 구축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이주 단지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규제를 풀고, 너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재건축·리모델링이 진행될 경우 주변 지역은 물론 수도권 전체 임대차 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윤석열 인수위에서 ‘중장기 과제’라는 언급이 나온 것도 이러한 이주 단지 문제 때문이다.
1기 신도시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신속하게,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한 사례다. 1기 신도시에서 시도한 아파트 중심 신시가지 전략은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규격화된 주거 모델이 30년 동안 뿌리내렸다. 빠른 성장과 획일화된 공급의 부작용(건축물의 빠른 노후 등)을 한국 사회는 각종 경제·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며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치는 이 과정에서 집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었고,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1기 신도시 문제는 한국식 노후주택 문제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가구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도시를 재구축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를 반영하는 주택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신도시 재구축을 논의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좋은 신도시란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1기 신도시 이외에도 줄줄이 ‘30년 넘은 주택’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2기 신도시만 해도 지은 지 곧 20년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한다. 결국 1기 신도시를 둘러싼 논쟁은 1기 신도시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지사 선거의 핵심 쟁점은 전국에서 조만간 펼쳐질 문제의 예고편일 수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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