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그놈들, 감방 갔을까..성착취물 소지 74%가 집행유예

최민영 2022. 5.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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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보도 그후][n번방 일반 가담자 1심 판결문 전수 분석]
피고인 378명, 평균 징역 13.2개월 · 벌금 653만원
"수요도 범죄" 엄벌 인식 커졌지만..집행유예는 한계
텔레그램 성착취 혐의로 기소된 주범 조주빈 등의 선고 공판이 열린 2020년 11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eNd(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bong9@hani.co.kr
텔레그램 성착취는 조주빈과 몇몇 주범들만의 범행이 아니다. 2020년 3월 조주빈이 검거될 당시, 엔(n)번방과 박사방을 비롯한 130개의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에 26만명(추산)에 이르는 ‘얼굴 없는 가담자’들이 있었다. 성착취물을 소지·판매·재유포한 이들은, 조주빈 일당이 성착취 범행을 이어가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말 조주빈 일당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법정에서는 얼굴 없는 가담자들의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조주빈 뒤에 숨은 엔번방 일반 가담자 378명의 1심 판결문 366건을 전수 분석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일반 가담자’ 378명은 1심 재판에서 평균적으로 벌금 653만원, 징역 13.2개월을 선고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이 261명(69.1%)으로 가장 많았다. 벌금형 64명(16.9%), 실형 47명(12.4%), 선고유예 4명(1.1%), 무죄는 2명(0.5%)이었다.

일반 가담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혐의를 유형별로 보면,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서 다운로드하거나 구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지’한 경우가 277명(73.3%)으로 가장 많았다. 소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중 205명(74%)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벌금형 61명(22%), 실형 6명(2.2%), 선고유예 4명(1.4%), 무죄는 1명(0.4%)이었다.

성착취물 소지 다음으로는 ‘방조’ 혐의(33명, 8.7%)가 많았다. ‘박사방’ 성착취 피해자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도록 피해자 이름을 집단적으로 검색하는 ‘실검 챌린지’에 동참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밖에도 성착취 사진·영상 판매 혐의(35명, 9.2%), 직접 성착취물 제작 혐의(20명, 5.3%), 내려받은 성착취물 재유포 혐의(9명, 2.4%), 직접 대화방 운영 혐의 등(4명, 1.1%)이 있었다.

법조계와 여성계에서는 <한겨레>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성착취물 소지 및 재배포 등 ‘수요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경각심이 강화된 결과로 받아들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성착취대응팀은 23일 “성착취물의 소지·구입·재배포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법원이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택하거나, 벌금형 액수를 상향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성착취물 소지·구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우, 경미한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하거나 선고유예를 하던 과거 관행에서 진일보한 변화라는 평가다.

벌금형에서 징역형으로 형량이 강화하는 추세는 긍정적이지만, 소지범 10명 중 7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점은 되짚어 볼 대목이다. 급속한 확산으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디지털 성착취물 범죄 특성을 반영해 성착취물 소지 등 혐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정교한 법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기존에는 성착취물을 제작하는 공급자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법 제도가 설계·운용됐지만, 이제는 수요자 범죄 쪽으로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엔번방 사건 이후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을 제작·배포·구입·소지·시청하는 경우 벌금형 없이 징역형 만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엔번방 사건 이전에는 디지털 성폭력이 피해자의 인권을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는지 인식 틀 자체가 없었다. 이에 따라 성착취물의 공급 행위만 처벌했고 수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서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이 계속되는 근본적 이유는 성착취물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소지·관람하고 심지어 재배포하는 두터운 수요층에 있다. 엔번방 사건 이후 수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된 만큼, 향후 디지털 성범죄 수사와 처벌에 있어서 수요자 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촘촘히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 <한겨레>는 대법원 판결서 열람시스템을 통해 1심 판결문 366건을 전수 조사했다. ‘n번방’ ‘박사방’을 키워드로 검색해 추출한 형사 판결문 중 비공개 신청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엔번방 일반 가담자 1심 사건을 모두 확인한 셈이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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