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이 할 일까지, 푸틴이 처리"..러시아 국방개혁 패착 셋 [Focus 인사이드]

방종관 2022. 5.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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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이 ‘원인’처럼 보일 수 있다. 차량에 펑크가 나서 회사에 지각했다고 가정하자. 펑크가 난 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타이어가 낡아 펑크가 났다면) 진정한 원인은 ‘타이어를 제때 교체하지 않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에서 전투 중인 러시아군. 로이터=연합


이러한 관점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전쟁 개시 이전부터 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추진된 러시아 ‘국방개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겉으론 화려한 국방개혁 성과

취임 직후인 2000년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방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러시아 군대와 국민, 나라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있다. 덩치만 크고 비효율적인 군대는 안 된다. 러시아군은 체첸 같은 지역에서 신속하게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동성 있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9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 열병식에서 행진 중인 러시아군. 로이터=연합


20년이 지난 뒤 러시아군은 외형적으로 새로운 군대가 되었다. 우선, 병력을 30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감축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장비의 70%가 현대화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부대구조를 군단ㆍ사단에서 여단ㆍ대대전술단(BTG) 중심으로 개편하고, 60여개의 교육기관을 10여개로 통ㆍ폐합했다.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름반도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등은 서방 군사 전문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벤 호지스(Ben Hodges) 미 육군 예비역 중장은 “순항미사일이 카스피 해에서 날아와 시리아의 표적을 정밀 타격했다. 러시아군의 발전 정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외형적으로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내면적인 한계도 식별된다. 3가지 관점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고자 한다.


푸틴의 정치적 카리스마에만 의존

개혁은 하부 구성원의 참여가 많을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1920~30년대, 독일군 위관ㆍ영관장교들은 ‘미래 전장에서 전차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이러한 행동은 영국ㆍ프랑스ㆍ미국에서라면 불이익을 받는 사유였다. 하지만 독일은 그 반대였다. 이들 중 다수가 장군으로 진급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이끌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AP=연합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카리스마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쟁점사항에 대한 ‘공론화’ 과정도 생략됐다. 그러자 군의 불만이 폭증했다. 2012년, 푸틴은 국방부 장관을 아나톨리 세르듀코프에서 세르게이 쇼이구로 전격 교체했다. 서방 언론은 군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하부 구성원들이 개혁 논의에 참여하는 것도 차단됐다. 국방개혁의 효과가 현장부대까지 전파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징병제 군대의 전투력이 초급 간부의 지휘능력과 입대 장병의 복무의지를 통해 발휘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이 준장이나 대령 수준에서 조치해도 되는 전술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러시아 지휘관들이 상부의 구체적인 지침만 기다리고 있다. 초급 간부들과 병사들은 위임된 권한이 없어 융통성 있는 전투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경쟁하려 전략무기에 과도한 예산

국방예산은 ‘합목적성’을 기초로 배분돼야 한다. ‘기회비용’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분야의 예산을 늘리면, 다른 분야는 줄이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어떤 위협을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가 우선순위의 기준이 돼야 한다.

지난 9일 열병식에서 러시아군의 최신 전차인 T-14 아르마타가 모스크바 거리에서 줄을 맞춰 이동하고 있다. 이 전차는 예산부족으로 아직 실전배치 전이라고 한다. 로이터=연합


1920~30년대의 일본군은 잘못된 사례다. 육군은 소련의 위협을, 해군은 미국의 위협을 강조했다. 결론은 장기 전략의 모호함 속에서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에서 ‘육군’과 ‘해군’ 모두 비효율적이었다. 진정한 합동작전도 불가능했다.

2018년 3월, 푸틴 대통령은 핵추진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최신 ‘전략무기’를 직접 공개한 바 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세계 최초로 실전 운용한 국가가 됐다. 미국 대비 약 12분의 1 규모(환율 기준)의 국방예산으로 전략무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전투력의 기반이 되는 무기체계에 예산을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해군과 핵을 포함한 전략무기 예산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육군 비중이 지나치게 낮았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가 러시아 무기체계증강계획(2011~20년)을 분석한 결과, 예산 비중은 해군 26%, 공군 21%, 항공ㆍ우주방어 17%, 육군 14%, 전략 미사일 6%, 기타 14% 순이었다.

2010년, 러시아군은 ‘T-14 전차’를 개발하여 2300대까지 생산(2020년까지)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무인포탑 방식을 채택하고, 대전차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동방어체계 장착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2015년 군사 퍼레이드에서 시제품이 등장한 이후 2022년 현재까지도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예산의 한계가 개발 지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최초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투력 보강과 피해 감소에 기여했을 것이다. 저가의 상용 무전기 및 타이어 사용 등도 예산 부족의 영향일 수밖에 없다.


교육과 훈련에 관심이 부족한 러시아군

전투력은 유ㆍ무형의 요소가 결합해 발휘된다. 1970~80년대 미군의 혁신은 M1 전차ㆍAH-64 공격헬기ㆍ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등 빅 파이브(big five)로 불리는 ‘무기체계’ 뿐만 아니라, ‘공지작전 교리’와 ‘교육훈련 혁신’이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일으키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 2월 벨라루스에서 훈련 중인 러시아군 공격 헬기들. AFP=연합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무형전력’에 관심이 부족했다. 교육기관을 통ㆍ폐합하면서도, 교육훈련 기간을 늘리거나 방법을 개선하지는 않았다. 공군 조종사의 연간 비행훈련 시간은 서방 국가의 절반에 불과하다. 징집병의 복무기간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한 것은 무형전력을 더욱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러시아군의 ‘대대전술단’은 기존 보다 분권화한 지휘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집권적 지휘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서도 구 소련시대의 폐습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한국의 기존 국방개혁에서도 이와 유사한 한계가 발견된다. 향후, ‘국방혁신 4.0’ 추진 과정에서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 9일 열병식에서 러시아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야르스가 모스크바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AFP=연합


첫째, ‘하향식’과 ‘상향식’ 추진을 병행해야 한다. 기존 국방개혁은 하부 구성원들의 참여가 부족했다. 그들이 혁신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생산적인 논쟁을 촉발하는 방법도 있다.

둘째, 국방예산 배분의 ‘합목적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출발점은 위협에 대한 재평가다. 이를 기초로, 국가안보전략으로부터 군사력 건설계획까지 긴밀한 연계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국방혁신은 유ㆍ무형 요소의 ‘상승효과’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 국방개혁은 무형전력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새로운 국방 시스템은 새로운 유형의 인재와 교육훈련, 조직문화 등을 필요로하다.

러시아 국방개혁의 한계가 국방혁신 4.0에 유용한 교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러시아의 국방예산=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 발표, 2021년도 659억 달러(환율 기준)이다. 구매력 기준은 약 1500억~2000억 달러로 평가된다. 미국(8010억 달러)와 비교하면 12분의 1(환율 기준), 4분의 1(구매력 기준) 수준이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ㆍ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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