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4] 디지털 영생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2022. 5.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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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 진시황제의 무덤, 트럼프 타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후세대에 몸과 이름을 남기려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겠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 네안데르탈인들조차도 ‘죽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조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최근에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라는 존재 역시 사라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 어차피 죽는다면 열심히 사냥을 나갈 필요도,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집단 무기력을 막기 위한 진화적 해결책이 필요했다. 저승에 대한 믿음이 첫 시도였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외에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하기에,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고대 이집트인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미라와 피라미드를 만들어 영생을 원했지만, 그 어느 파라오도 죽음의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계 최고의 혁신가들이 모여 있다는 실리콘밸리에서 ‘죽음’은 이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 역시 늙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3가지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먼저 세포와 몸의 노화를 생물학적으로 막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육체를 영원히 보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뇌의 모든 정보를 읽어 보존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나의 기억과 정체성의 영생은 가능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브레인리딩’은 SF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비현실적 기술이다.

결국 오늘날 기술적으로 가능한 ‘영생’은 디지털 이모털리티(immortality) 정도이겠다. 우리가 남긴 데이터를 사용해 만든 아바타를 통해 미래 메타버스 세상에서나마 영원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하지만 나의 데이터와 아바타가 진정으로 나 자신일까? 내가 나라는 사실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아바타로서의 영생이 나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21세기에 또 다른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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