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보행자우선도로.. 보행자 위협 급가속에 경적 '빵빵'
특별취재팀 2022. 5. 24. 03:03
[보행자에 진심인 사회로]〈5〉'보행자우선' 시범지구 2곳 가보니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7길.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폭 10m, 길이 500m 거리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 일대는 서울시가 2016년 보행자우선도로 시범 사업지로 지정한 곳으로 차량 속도가 시속 30km까지로 제한돼 있다.
30분 동안 차량 50여 대, 보행자 100여 명이 지나갔다. 차량 상당수는 인파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한속도를 지켰다. 하지만 10여 대는 급가속하며 보행자를 스쳐갔고, 일부 차량은 보행자를 향해 여러 차례 경적을 울렸다.
보행안전법과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7월 12일부터 전국에서 보행자우선도로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되면 운전자는 제한속도(시속 30km 미만, 필요 시 20km 미만까지 지정 가능)를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행자와의 ‘안전거리’도 확보해야 한다. 속도를 높여 보행자를 추월하거나 위협적으로 운전하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법 시행 50여 일을 앞두고 서울시의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지 두 곳을 둘러봤다. 다른 이면도로와 달리 상당수의 운전자가 서행했고, 불법 주정차 차량도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시범사업지 지정 5년이 지났음에도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 문자-심벌 등 안내판 없인 ‘반쪽’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백제고분로7길의 경우 시간당 506명이 걸어가고, 420대의 차량이 평균 시속 14.5km로 주행한다. 일반도로와 달리 노면을 회색과 청색으로 포장해 걷기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점검 결과 상당수의 차량은 제한 속도를 지키며 서행했다. 4월 20일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고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선 보행자가 차로 중앙까지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으며, 운전자는 안전한 거리에서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보행자가 피해야 할 만큼 급가속하는 차량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인근 주민들은 차량 일부가 ‘탈선’ 하는 원인으로 이곳이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명확히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이진규 씨(43)는 “여태껏 장사를 하면서도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지라는 걸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모 씨(51·여)는 “야구 경기가 끝난 주말 밤이면 사람들이 몰리는데 인파와 어둠에 가려져 일반도로와 구분하는 도로 표면 색상마저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범사업지인 서울 영등포구 ‘먹자골목(당산로 30길)’ 인근 주민들도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대부분 알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선 시작점과 끝 지점에 문자로 된 안내판을 세우고 도로 표면에도 보행자우선도로임을 명확히 상기시키는 심벌(그림)을 새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조 연구원은 “아스팔트 디자인이나 색상에 변화를 주는 정도로는 보행자우선도로라는 점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며 “비용은 더 들지만 아스팔트 대신 블록으로 도로포장을 바꿔 차량 속도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 전문가 “벤치나 조경시설 설치해야”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폭 10m, 길이 500m 거리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 일대는 서울시가 2016년 보행자우선도로 시범 사업지로 지정한 곳으로 차량 속도가 시속 30km까지로 제한돼 있다.
30분 동안 차량 50여 대, 보행자 100여 명이 지나갔다. 차량 상당수는 인파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한속도를 지켰다. 하지만 10여 대는 급가속하며 보행자를 스쳐갔고, 일부 차량은 보행자를 향해 여러 차례 경적을 울렸다.
보행안전법과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7월 12일부터 전국에서 보행자우선도로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되면 운전자는 제한속도(시속 30km 미만, 필요 시 20km 미만까지 지정 가능)를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행자와의 ‘안전거리’도 확보해야 한다. 속도를 높여 보행자를 추월하거나 위협적으로 운전하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법 시행 50여 일을 앞두고 서울시의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지 두 곳을 둘러봤다. 다른 이면도로와 달리 상당수의 운전자가 서행했고, 불법 주정차 차량도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시범사업지 지정 5년이 지났음에도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 문자-심벌 등 안내판 없인 ‘반쪽’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백제고분로7길의 경우 시간당 506명이 걸어가고, 420대의 차량이 평균 시속 14.5km로 주행한다. 일반도로와 달리 노면을 회색과 청색으로 포장해 걷기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점검 결과 상당수의 차량은 제한 속도를 지키며 서행했다. 4월 20일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고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에선 보행자가 차로 중앙까지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으며, 운전자는 안전한 거리에서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보행자가 피해야 할 만큼 급가속하는 차량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인근 주민들은 차량 일부가 ‘탈선’ 하는 원인으로 이곳이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명확히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이진규 씨(43)는 “여태껏 장사를 하면서도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지라는 걸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모 씨(51·여)는 “야구 경기가 끝난 주말 밤이면 사람들이 몰리는데 인파와 어둠에 가려져 일반도로와 구분하는 도로 표면 색상마저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범사업지인 서울 영등포구 ‘먹자골목(당산로 30길)’ 인근 주민들도 보행자우선도로라는 걸 대부분 알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선 시작점과 끝 지점에 문자로 된 안내판을 세우고 도로 표면에도 보행자우선도로임을 명확히 상기시키는 심벌(그림)을 새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조 연구원은 “아스팔트 디자인이나 색상에 변화를 주는 정도로는 보행자우선도로라는 점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며 “비용은 더 들지만 아스팔트 대신 블록으로 도로포장을 바꿔 차량 속도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 전문가 “벤치나 조경시설 설치해야”
경찰청은 보행자우선도로 안내 시설물과 노면 표시에 대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7월 안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도로교통공단은 올 3월 안전표지와 노면에 들어갈 심벌을 경찰청에 전달했다. 행정안전부 또한 각 지자체가 보행자우선도로를 지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편람을 만들어 5월 안에 배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송호권 행안부 안전개선과 사무관은 “운전자가 자주 쓰는 내비게이션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도로 진입 시 보행자우선도로임을 안내하는 기능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보행자우선도로상에 벤치와 조경시설을 설치해 불법 주정차나 과속을 자연스럽게 막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단속과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보행자 안전을 우선할 수 있게 하는 ‘교통환경’을 조성하자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특히 대국민 홍보가 부족한 법 시행 초기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행자우선도로의 선진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 ‘보네르프’의 핵심은 차량 통행을 불편하게 만들어 속도를 낮추는 것”이라며 “이를 벤치마킹하면 운전자가 보행자우선도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안전 운행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호권 행안부 안전개선과 사무관은 “운전자가 자주 쓰는 내비게이션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도로 진입 시 보행자우선도로임을 안내하는 기능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보행자우선도로상에 벤치와 조경시설을 설치해 불법 주정차나 과속을 자연스럽게 막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단속과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운전자들이 자발적으로 보행자 안전을 우선할 수 있게 하는 ‘교통환경’을 조성하자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특히 대국민 홍보가 부족한 법 시행 초기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행자우선도로의 선진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 ‘보네르프’의 핵심은 차량 통행을 불편하게 만들어 속도를 낮추는 것”이라며 “이를 벤치마킹하면 운전자가 보행자우선도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안전 운행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
▽ 팀장 강승현 사회부 기자 byhuman@donga.com ▽ 김재형(산업1부) 정순구(산업2부) 신지환(경제부) 김수현(국제부) 유채연(사회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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