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인건비 비싸 장사해도 남는 게 없다" 자영업자 61%, 대출로 연명

손진석 기자 2022. 5.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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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

“장사를 하는 건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건지 모르겠네요. 배달 수수료는 뛰고, 재료비도 올라서요.”(광주광역시에서 2019년부터 식당을 운영하는 30세 여성)

“재료비가 다 올랐지만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어들까봐 고민스럽다”(서울의 54세 카페 주인)

조선일보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1분기 조사에서는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작년 3분기부터 실시해 이번이 세 번째 조사다. 800명의 패널(조사 대상 자영업자)을 정해 놓고 정기 조사를 하는 방식이라 경기 상황 변화에 대한 정확도가 높은 조사 방식이다.

◇거리 두기 풀리니 물가 상승 충격

이번 조사는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영업 정상화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4월 경기까지 반영해 조사했다. 전 분기(작년 4분기)보다 매출이 줄었다는 응답이 58.4%였다. 거리 두기가 풀려도 손님이 크게 늘지 않아 아파트 상가나 전통시장 등의 경기가 아직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료비 상승으로 순익이 줄고, 가격을 올리다 보니 매출에도 타격을 입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서울에서 6년째 소규모 의류 제조업을 하는 30세 남성은 “매출이 반토막 나서 생활비가 부족하고 세금도 미납돼 있다”고 했다.

2~3개월 후 물가 전망에 대해 응답자의 80.6%는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10년째 사진 스튜디오를 하는 44세 여성은 “홍보비가 너무 많이 들고 가게 월세랑 자재값도 많이 올라 자금이 바닥 났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는 37세 남성은 “재료값이 올라서 영업 시간 늘어나도 별 이득이 없다”고 했다. 정유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매출이 늘어나도 물가 상승으로 실질적인 이익이 늘어나지 않아 거리 두기가 완화됐어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인테리어 업체, 도배 업자 등이 가장 어려워

인테리어 시공업·도배업 등 건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3개월 내 주변 가게가 폐업한 걸 봤다’는 응답이 69.9%로 작년 4분기(72.8%)보다 줄었는데, 건설업은 83.3%로 작년 4분기(64%)보다 크게 높아졌다. 부동산 경기 하락과 물가 상승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분석했다. 경기도에서 도배업을 하는 61세 여성은 “2007년 도배를 시작한 이후 지금처럼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많이 오른 적은 없었다”고 했다.

향후 2~3개월 뒤 매출 전망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부동산업(52.6%)에서 가장 높게 조사됐다. 서울에 사는 60대 부동산 중개업자는 “매매 건수가 줄어 문을 닫기 직전”이라고 했다.

운수업 종사자들도 기름값 인상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8년째 화물 운송업을 하고 있는 50대 남성은 “운송 건수도 줄었지만, 경유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라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자료=하나금융경영연구소·엠브레인, 그래픽=양진경

◇가게 임차료 못 내는 자영업자 늘어

조사 대상 800명의 자영업자의 61.3%가 “대출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사업 관련으로 대출이 있다는 응답은 작년 3분기 첫 조사에서 52.8%였는데 작년 4분기 56.8%로 늘었고, 이번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60%를 넘었다. 경기도의 42세 식당 주인은 “대부 업체에서 돈을 빌려다 쓰다 보니 금리가 너무 높기도 하고 신용등급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떨어졌다”며 “월세가 5개월 밀렸다”고 했다.

가게 임차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2.1%로서 작년 4분기(20.9%)보다 늘었다. 대구에서 8년간 카페를 운영한 40대 남성은 “(코로나 사태 이후) 2년간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임차료, 각종 세금, 고정 비용을 계속 부담하느라 빚만 늘었다”며 “임차 계약이 끝나면 가게 문을 닫겠다”고 했다.

◇거리 두기 해제로 영업 악화 전망은 줄어

이번 조사에서 패널들은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영업 정상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2~3개월 후 경기 전망에 대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이 42.5%로 뚝 떨어졌다. 작년 4분기에는 65.3%에 달했다.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

조선일보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여론조사 회사 엠브레인에 의뢰해 자영업자 800명을 분기마다 조사한다. 작년 3분기에 첫 조사를 했으며 이번이 세 번째다. 조사 대상 800명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자영업 실태 변화와 길거리 경기 변동을 추적하듯 들여다볼 수 있다. 서울 및 경기와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4개 광역시 60업종이 대상이다. 폐업 등으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자영업자는 동일한 업종·지역에서 충원한다. 객관식 설문뿐 아니라 주관식 조사도 하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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