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사권 조정후 사건 밀리자.. 경찰, 처리 수당 2만원 검토

이해인 기자 2022. 5.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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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수사 분야 경찰들이 사건 하나를 처리할 때마다 2만원씩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과 올해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경찰이 맡아야 할 사건이 늘면서 경찰은 “사건 처리 속도가 늦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수당 지급’을 꺼낸 것이다.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주완중기자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달 이 같은 안을 인사혁신처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처리 1건당 수당을 2만원 지급하되 1명이 한 달 최대 4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게 했다. 전국 일선 경찰서 경제팀, 사이버팀, 지능팀 수사관 7600여 명이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진정이나 탄원과 같은 사건은 제외하고 정식 고소·고발 사건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며 “송치나 불송치 결정을 내린 시점에 2만원씩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는 경찰 본연의 업무를 하는 것인데,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별도의 세금을 써가며 수당을 주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또 2만원 받는다고 일선 경찰들이 사건 처리를 빨리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수사 부서와 비수사 부서를 갈라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찰청 비수사 부서의 한 과장은 “수사 인력 재배치나 역량 확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야 국민이 신뢰해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잇따른 검찰 개혁으로 경찰 권한은 더없이 커졌다. 우선 작년 1월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 사업·대형 참사)로 축소되면서 기존에 검찰과 나눠 하던 수사를 경찰이 대부분 도맡게 됐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권에서 벗어나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됐다. 지난달 통과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 오는 9월 시행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던 기존 6대 범죄 중 부패와 경제 범죄를 제외한 공직자, 선거, 방위 사업, 대형 참사 사건마저 경찰로 넘어온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후 1년 5개월쯤이 지났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이 커진 권한에 맞게 사건 처리를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 중소기업인 H사의 임원 김모(56)씨의 경우 지난 2020년 말 2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자기가 2016년 인수한 회사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다. 회사를 인수한 후 회계감사를 통해 횡령 의혹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고발 이후 1년 6개월간 3번이나 고발인 조사를 받았지만 사건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담당 수사관은 그사이 4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이 수사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결국 인수한 회사는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고 7800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약 2562억원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모펀드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 사건도 경찰은 2021년 5월 내사를 시작했지만 1년이 지나서야 장하원 대표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디스커버리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피해자 대부분은 노후자금, 퇴직금을 넣은 일반 서민”이라며 “수사가 지지부진한 탓에 피해자들은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변호사 1155명을 상대로 한 대한변협 설문조사에서,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조사 지연 사례를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이 73.5%(849명)에 달하기도 했다.

일선 경찰 수사관 불만도 크다. 검찰이 맡던 수사가 상당수 경찰로 왔지만 인력은 2020년 3만1199명에서 올해 3만4679명으로 큰 변동이 없다. 경찰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8년 48.9일에서 2021년 64.2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찰들의 수사 부서 기피도 심해진다. 경찰은 형법, 형사소송법, 범죄수사실무 등의 시험을 통과한 뒤 일종의 수사 자격증인 ‘수사 경과(警科)’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어렵게 수사 경과를 받아놓고도 “수사 부서에서 일하기 싫다”며 자격을 반납하는 경찰관이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 2020년 스스로 자격을 반납하겠다고 한 사람은 794명이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지난해에는 3000여 명으로 폭증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사건 처리 수당을 주는 등 ‘당근’이 필요하다는 게 경찰청 얘기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찰로 일이 몰리는 상황에서 젊은 경찰관들의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경찰의 사건 처리도 지연되고 있는 만큼 수사 부서 경찰관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수사 부서에 있는 경찰들이 더 승진을 잘할 수 있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매년 모든 경찰관은 수·우·양·가 4단계로 평가를 받는데, 3년 치 평균을 내 승진 점수에 반영한다. 하지만 수사 경찰들은 앞으로 무조건 수·우 중 하나를 받게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승진을 하기 위해 채워야 하는 계급별 근속 연수를 1년씩 깎아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수치상으로 사건 처리에 며칠이 걸렸는지, 사건을 몇 개 처리했는지만 따져서 수당을 주거나 평가를 좋게 주면 경찰은 처리하기 쉬운 사건만 처리해버리고 피해자가 많고 복잡한 사건은 묵혀 버리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사관의 업무 부담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으로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은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1800명과 2700명의 증원을 요구했지만 각각 560명, 440명 반영되는 데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의 사무가 조정된 만큼 검찰 수사관 정원을 조정해 이를 경찰 수사관 증원에 반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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