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 사라지는 지방, '메가시티'로 산업생태계 구축해야"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부동산. 누구에게나 불공평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무주택자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박탈감을 느끼고, 유주택자는 남들보다 싼 아파트에 사는 것에 박탈감을 느끼는 시대다. 누구나 불행한 시대가 된 셈이다.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 '집값 안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집값은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외부의 강한 타격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 지난 40여 년 동안 우상향을 이어왔다. 이런 도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와 진행하는 새 연재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왜 생겨나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과 관련한 한 가지 주제를 두고 <프레시안>이 질문하고 마 교수가 답하는 방식이다.
마 교수는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도시행정을 주제로 균형 있는 국토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온 현장 중심 연구자다. 대표저서로 <지방도시 살생부>(개마고원 펴냄),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메디치미디어),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개마고원 펴냄) 등이 있다. 편집자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닌 현재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매년 줄어드는 인구는 물론이고, 부산대, 경북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도 신입생 정원을 어렵사리 채우고 있다.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청년세대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적응할 지역인재까지도 유출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결국, 미래조차도 암울하다는 이야기다.
지방이 쪼그라들수록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국내 총인구는 지난해 처음 감소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경기도 인구는 출산율 감소에도 2036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인구의 20%였던 196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 수도권에는 50%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전 국토의 10%가 약간 넘는 수도권 땅에는 국회를 비롯해 핵심 정부 기관과 기업 본사들이 대부분 포진해 있다.
반면, 지방은 향후 20년 이내 소멸할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이제는 회복 불능의 지경까지 이른 셈이다.
지방은 물론, 중앙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지난 4월 19일 출범한 '부울경 특별연합'은 그 결과물이다. 일명 '메가시티'의 시작인 셈이다. 부산, 울산, 경남을 하나의 생활권과 경제권으로 묶는 게 골자다. 이를 시작으로 현재 780만 명 규모인 3개 시도의 인구를 2040년까지 1000만 명으로 늘리고, 지역 내 총생산도 491조 원에 달하는 거대도시로 키운다는 게 목표다. 기존 메가시티인 수도권의 대항마로 또다른 메가시티를 띄운다는 계획이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이미 2018년부터 지방 소멸론을 극복하려면 '메가시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마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메가시티란 무엇이고, 이것이 어떤 프로세서로 진행될 수 있는지, 그리고 메가시티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런 추세 20년 이어지면 지방은 소멸한다"
프레시안 : 간단히 설명하면 도시끼리 연합하는 게 '메가시티(megacity)'라고 한다. 이것이 어떤 개념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 달라.
마강래 : 메가시티는 추상적인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정의도 다양하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접한 도시들 간의 상호작용이 많아졌다. 도시와 도시가 연계되면 거대도시가 생긴다. 이런 거대도시를 부르는 말은 많다. 메가시티, 메가리전, 메가시티리전, 메갈로폴리스, 세계도시, 글로벌시티, 세계도시지역 등 광역권의 어떠한 특징을 강조하는 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해외 문헌을 보면, 메가시티라는 이름은 '많은 인구'가 강조될 때 흔히 사용된다. 확고한 기준은 없지만 인구 1000만 이상의 도시권이 메가시티로 불린다. 노동과 자본, 상품의 흐름이 행정구역이나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이동하고 있음이 강조될 때는 메가리전(megaregion) 혹은 메가시티리전(megacity region)이란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반면에 도시들이 선형으로 쭉 이어지고 있는 일종의 '회랑' 형태가 강조될 때 거대한 광역권이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메가시티는 사실 '메가시티리전'에 가깝다. 생활권과 경제권을 공유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초광역적 사업'이 필요하다. 메가시티리전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초광역'이란 광역보다도 넓다는 느낌이 난다.
마강래 : 광역이라는 단어는 '넒은 권역'이라는 뜻이다. 도시계획에서 광역의 의미는 '지자체 행정구역을 뛰어 넘는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행정구역을 뛰어넘어 설치되거나 사용되는 기반시설이 많다. 도로나 철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둘 이상의 지자체에 걸쳐 있다. 둘 이상의 지자체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원이나 화장장, 공항도 광역시설에 포함된다.
프레시안 : 메가시티는 그런 광역을 뛰어넘는다는 것인가.
마강래 : 초광역(超廣域)이란 말은 그런 광역조차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각각이 광역지자체이다. 이런 광역지자체를 뛰어넘어 연합체를 구성하고 협력 사업을 하게 되니 초광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구와 경북도 마찬가로 광역자치단체이다. 이들이 모여 광역을 뛰어넘는 초광역적 협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적 메가시티의 기본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이러한 메가시티가 왜 필요한가.
마강래 : 도로나 철도, 공항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겠다. 이런 시설들은 행정구역의 한계 때문에 효율적으로 설치되기 힘든 특징이 있다. KTX 공주역의 위치는 공주, 부여, 논산, 계룡 등 모든 지역과의 접근성을 고려했다. 결국 도심접근성이 아주 낮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KTX역이 들어섰다. KTX 오송역도 마찬가지다. 충북과 세종의 줄다리기 끝에 애매한 곳에 역이 생겼다. 아무리 버스를 연결해도 불편한 위치라 KTX 세종역 신설 요구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 볼 일이 있어 세종시에 가기 전에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길을 나선다. 그리곤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무원과 국책연구원들이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비용을 누군가가 한 번 계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공항은 어떠한가. 공항을 둘러싼 지자체간 갈등을 숱하게 보아오지 않았는가. 국내 대부분 공항은 적자다. 애먼 곳에 설치된 데다가 지자체 간 견제와 경쟁으로 교통접근성도 강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018년 말에 출간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를 통해 메가시티만이 지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비수도권은 연계와 협력만이 살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인구 2500만이 넘는 하나의 거대 대도시권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위력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의 지방 광역시에서도 매해 100명 중 1~2명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20년 정도 지속되면 지방은 어떻게 되겠는가? 복잡한 미래예측이 필요하지 않다. 지방은 버틸 수 없다.
프레시안 : 생각해보면, 수도권이야 말로 초광역 협력이 가능한 메가시티인 듯하다.
마강래 : 수도권을 구성하고 있는 서울, 경기, 인천은 통으로 얽히고설킨 동일 생활권이다. 그리고 동일 경제권이기도 하다. 일례로 분당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천에 사는 사람도 그렇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통망이 촘촘해지고, 생활권이 공유되니 그렇게 됐다. 서울은 경기 지역 인프라를 그대로 누리고, 경기 지역 사람들은 서울 인프라를 그대로 누리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초광역 시장이 됐다.
최근에는 충청도와 강원도의 일부도 수도권의 기능적 권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GTX B노선 춘천 연장도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면 춘천시민들은 여의도를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서울이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옆 동네가 되는 것이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GTX플러스(+) 공약을 발표했다. GTX A, B, C 노선을 연장하고 D, E, F도 신설하겠다고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의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GTX를 사방팔방에 까는 계획이다. GTX가 수도권의 공간을 압축하고, 더욱 강력한 초광역권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프레시안 : GTX가 수도권을 강하게 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지속해서 모이는 식이다.
마강래 : GTX는 전철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도시 내 거점들을 엮는 교통수단으로 수도권의 공간구조를 완전히 재편할 것이다.
내가 GTX 추가노선 설치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수도권이 강해질수록 지방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지방 간 운동장이 기울어질수록 수도권의 흡입력은 더욱 강해진다. 모노폴리 보드게임과 같은 이치다. 한 플레이어에게 돈이 쏠릴수록, 나머지 플레이어가 파산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GTX A, B, C만으로도 지방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것이 메가시티다. 현재 수도권의 대항마로서 가장 강력하게 떠오르는 지역은 '부울경특별연합'이다. 힘의 균형을 위해 지방도 뭉쳐야 사는 것이다. 그래야 지방도 GTX를 깔 수 있고 거대 지역을 하나로 묶어 생활권과 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다. 인프라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활동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메가시티 내 교통망 이어지면, 첫 단추를 채워진 것이다"
프레시안 : 그간 지방의 위기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강래 : 국토균형발전은 지난 정부들의 국정과제에서 빠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과제였다. 정부도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효과가 없었던 건 네 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공간격차를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점 △수도권 독식의 사회적 비용에 대해 과소평가했다는 점 △균형발전에 대한 큰 그림 자체가 없었던 점 △부처간 여러 균형발전 정책들을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점 등이다.
프레시안 : 다른 것은 이해가 되는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공간격차를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마강래 : 지역간 격차는 '젊은 인구의 이동'에 의해 발생한다.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곳은 명확한 특징이 있다.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인구가 그랬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1990년대부터 발생한 탈공업화 현상도 국토 공간에 영향을 주었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산업단지가 지방도시의 외곽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 속에서 지방도 버틸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2010년 초반부터 시작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산업의 입지'가 크게 바뀌고 있다. 첨단기업들이 대도시로, 대도시 내 교통의 결절점(結節點)으로 집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첨단기업들이 수도권,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서울 중에서도 강남(판교 포함)으로 몰리고 있다.
프레시안 : 왜 그러는가.
마강래 : 이들 첨단기업들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를 떠나면 첨단 기업들은 원하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자동화된 기계와 값싼 노동력으로 이윤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첨단기업들의 이윤극대화 메커니즘은 전통적 기업들과는 많이 다르다. 최근에는 좋은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존망을 결정하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 하나가 기업의 10년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플랫폼 기업의 경우는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승자독식의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데, 근로자의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기업의 수익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를 일으킨다. 그러니 인재가 몰려있는 대도시를 이들 기업은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공간격차를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지방에서도 혁신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적 그릇을 만들어야 젊은이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
프레시안 : 사실 지방에서 기업을 유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메가시티가 만들어진다 해도 이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 부울경특별연합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는 것은 수도권처럼 부산·울산·경남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광역교통망을 만드는 일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초광역 협력'을 하는 느낌이다. 이것으로 기업 유치가 가능한가.
마강래 : 광역교통시설은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시설이디. 이러한 시설이 잘 구축돼 있으면 거점 이외 주변에 있는 자원들도 하나의 장소에 집합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는 여러 지역에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는가. 교통망이 연결되면 여러 군데 흩어진 인재들을 모을 수 있는 토대가 갖춰지게 된다. 자연히 교통결절점은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
프레시안 : 경기도에 대기업 공장들이 들어서는 이유도 비슷할 듯하다.
마강래 : 이런 질문을 던져보겠다. '왜 강남 집값이 비싼가?'
프레시안 : 일자리도 있고, 교통도 좋고, 교육 인프라도 잘 돼 있는 등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공간이라서 아닌가.
마강래 :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장소의 첫 번째 조건은 교통이다. 강남의 기초체력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제3한강교(현재의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키울 수 있었다. 강남은 대한민국 최고의 교통 요지이다. 그러니 일자리 집중도가 가장 높다. 또한 일자리와 일자리를 찾는 인재들이 모일 수 있었다. 이들을 서포트하기 위한 문화와 상업기능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사교육 시장도 커지니, 주택 수요도 증가해 왔다. 강남엔 교통 및 생활 인프라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 삼성역에 GTX 두 노선이 교차될 예정이다. 코엑스와 잠실운동장을 잇는 거대지역이 마이스(MICE) 산업 중심의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되고 있다.
강남은 교통 접근성 강화를 통해 탄생한 곳이다. 교통은 생활권과 경제권을 만드는 뼈대이다. 메가시티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거점을 강화할 수 있는 교통망을 구축해 거대한 지역을 한 두 시간 생활권으로 엮는 것이다. 이것이 된다면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첫 단추는 채워진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맞는 산업생태계 구축해야 지방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초광역 교통망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듯하다. 서로 생각도 다르고, 재정적인 문제도 있을듯하다.
마강래 : 효율적인 교통망 구축을 위해서는 광역적 계획을 넘어 초광역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프레시안 : 누가 계획하는가도 중요할 듯하다.
마강래 : 사실 부울경특별연합이 출범하기까지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자체별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복잡한 정치적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부울경특별연합은 우리나라 최초의 특별지자체이다. 내년 1월부터 공식적 사무를 수행하는데,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프레시안 : 특별지자체란 무엇인가.
마강래 : 부산, 울산, 경남 이 세 지역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지자체라고 보면 된다. 기업으로 치면 지주회사라고나 할까. 이 특별지자체는 몇 가지 특수한 목적, 즉 초광역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무를 주로 다루게 된다. 부울경특별연합은 세 광역지자체가 힘을 합쳐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을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소 경제권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친환경 조선산업, 디지털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광역적 시각이 필요하다. 하나의 생활권을 위한 대중교통망 확충도 초광역적 사무의 일부이다.
프레시안 : 해외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나.
마강래 : 일본의 예를 들 수 있다. 수도인 도쿄로 인구와 일자리가 집중되자 오사카 지역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자체들이 뭉쳐야 산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간사이연합은 오사카 지역 12개 지자체가 특별지자체를 구성한 것이다. 12개 지자체의 인구는 모두 2100만 명 정도다. 2010년 초에 만들어졌는데, "도쿄 일극화를 타파하고 지역이 스스로 책임지는 분권형 사회를 구축한다"는 설립취지를 밝혔다. 지자체들이 연합해 광역적 사무를 함께 수행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별지자체 제도는 일본의 사례를 많이 참고해 설계되었다.
영국에서도 비수도권의 8개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전략을 폈다. 런던(Greater London)에만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 때문이다. 런던도 1990년 700만 정도였던 인구가 2020년에는 900만 정도로 팽창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협력사업을 하지 않으면, 도시가 어려워질 것이란 고민이다. 맨체스터, 리버풀 등의 도시가 주변 지자체들과 서로 뭉쳐 '연합지자체(Combined Authorities, CA)'를 만들었다. 일종의 도시들의 연합된 또 다른 지자체이다. 시장도 선출할 수 있는 이 연합지자체는 중앙정부로부터 이양 받을 권한에 대한 분권협상(Devolution Deal)도 진행할 수 있다. 중앙정부와 연합지자체의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교통, 주택, 고용, 경찰, 소방, 자금 등 다양한 중앙의 권한이 맞춤형으로 지방에 이양되고 있다. 분권형 지역균형발전의 주체가 '도시권'이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프레시안 :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 메가시티 같은 대항마도 중요하지만 수도권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강래 : 수도권을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방이 위기를 맞은 건, 수도권 규제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방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지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거점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 등을 구축하고 공항이나 지방대학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일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투자를 해도, 돌아오는 효과는 매우 미미할 듯하다.
마강래 : 맞는 이야기다. 지방의 인구가 줄어드는 게 멈추지 않고 있다. 투자의 효과가 수도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는가. 지방에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투자방법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좀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할 듯하다.
마강래 : 가장 중요한 건, 지방을 떠나는 청년들을 어떻게 붙잡아 둘 수 있는 대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압축적인 공간'에 청년이 원하는 기업을 유치하고, 문화, 상업시설을 집중하는 전략을 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략은 초광역권 내 '강력한 대도시권을 구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프레시안 :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마강래 : 가장 시급한 건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최적의 장소는 유동인구가 집중되는 KTX 역세권 주변이다. 큰 면적도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역을 중심으로 반경 600-700m내 포함되는 지역의 면적은 약 1.1-1.5㎢ 정도 된다. 역까지 느린 걸음으로도 10분 내 도보권이다. 여기에 '앵커'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의 대학, 공공기관을 연계하고, 청년들을 위한 주택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문화와 상업, 교육 기능이 함께 발전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자리매김 된다. 즉, 청년들이 원하는 밀도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기업도 청년 인재를 쫓아 지방으로 이전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런 개념으로 제안된 정책이 '도심융합특구'이다. 도심으로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몰리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해서, 도심기능의 고밀도 혁신공간을 조성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주도의 정책이기 때문에, 특구 내 인프라를 넘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도심융합특구가 범부처 사업으로 전환된다면, 이 특구에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적용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균형발전에 대한 정책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특구에 여러 부처의 인센티브를 패키지화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좋은 이야기이나 부작용도 우려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거점 지역을 키울 경우, 그 주변 지역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마강래 : 맞는 이야기다. 다만, 주변 지역의 도움 없이 거점은 성장할 수 없다. 그렇기에 거점에서 나오는 이익을 주변과 나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거점에서 개발 사업을 할 경우, 거기에서 나오는 개발이익을 주변 지역에도 나눠주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초광역권 내 상생기금을 마련하고, 개발사업 시 거점과 비거점을 묶어서 교차 보전하는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세재의 개편을 통해 지역간 상생 전략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방식을 통해 균형 개발을 도모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사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고통스럽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높은 교육비 등이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인프라나 교통은 편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마강래 :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집값 상승, 저출생, 고령화 문제는 모두 수도권 일극화 현상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지방도 문제지만,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이 겪는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5년간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수도권 집값 폭등은 기본적으로 수도권 쏠림현상과 관련이 있다. 집값은 기본적으로 '밀도'의 문제다. 서울의 아파트는 보통 10억이 넘는다. 서울의 평범한 아파트조차 꿈을 꿀 수 없는 청년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니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룬다.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6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게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 즉 밀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낭비적 경쟁'이다. 서울은 1인당 사교육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사는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아이 하나 생긴다고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수도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종족번식의 욕구가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본성을 이겨낼 정도의 강한 스트레스와 압박이 수도권에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도 문제지만,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해결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격차 해결의 마지막 열쇠가 메가시티이다. 메가시티를 단순히 지자체를 합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지자체를 합쳐서 인구가 커진다고 지역이 더 큰 힘을 얻겠는가? 메가시티의 기본은 '연대와 협력'이다. 이를 통해 지자체 간 중복투자와 낭비적 경쟁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때 지방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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