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끝나자마자..'정호영 암초' 털어낸 尹대통령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협치 등 고려 '예고된 수순'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기자 =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밤 결국 물러났다.
형식은 자진 사퇴이지만, 사실상 지명 철회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야 반대를 무릅쓰고 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 후보자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주기 위해 본인의 결단에 따른 자진사퇴라는 '퇴로'를 확보해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정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보류하면서 그의 거취 정리는 여권 내에서도 예고된 수순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야권에서 '제2의 조국 사태'로 명명할 정도로 인사청문과정에서 불거진 자녀 문제가 2030 정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정 문제를 건드리면서 6·1 지방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당과의 협치도 고려 요소였다.
다만 20∼22일 한미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벤트'가 끝난 뒤에 정 후보자 거취 문제를 정리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대통령실 내부 분위기였다.
오는 24일 윤 대통령이 임기 만료를 앞둔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과 용산 집무실에서 만찬하기 전까지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는 내부 기류 또한 있었다.
결국 정 후보자는 이날 밤 보건복지부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며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정 후보자 거취는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와 얽히면서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이 한 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표결 전에는 정 후보자 임명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에 공을 넘긴 셈이다.
결국 한 총리 임명 동의안은 지난 20일 민주당의 협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대신에 '정호영 낙마'라는 청구서를 재차 내밀었다.
민주당과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하는 국민의힘도 사퇴 압박에 동참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원구성 협상, 추경안 처리 등 민주당과 풀어나가야 할 원내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정 후보자가 '암초'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당내 중진 및 다수 의원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한 결과 정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으냐,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거취 문제는 본인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자진사퇴 요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인사들은 이날까지도 물밑에서 정 후보자와 접촉하며 자진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방위 사퇴 압박에 내몰린 정 후보자가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간 정 후보자의 자녀 편입학 과정 의혹 등에 대해 "부정(不正)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며 '신중론'을 펼쳐왔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상당수 의혹이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본인이 '삼고초려'해서 발탁한 인사에 대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거취를 정리하는 상황에 대해 고민이 컸다는 게 대통령실 주변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팩트'와 별개로 '거대 야당'과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실제 윤 대통령이 정 후보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며 "정 후보자가 국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했다는 점을 윤 대통령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끝까지 '지명 철회' 카드를 쓰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정 후보자는 이날 밤 자진사퇴 입장을 밝히기 전에 윤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해 사퇴에 대한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도 이를 듣고 자진 사퇴를 사실상 수용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dh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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