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땀·원칙·동료애, MZ 세대가 열광한 손

박린 2022. 5. 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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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케인(오른쪽) 등 토트넘 선수들이 23일 열린 EPL 최종전에서 23호 골을 터트린 손흥민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손흥민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은 “동료들이 하프타임 때 도와주겠다고 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3일(한국시간) 영국 노리치의 캐로 로드에서 열린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 38라운드 토트넘과 노리치시티의 경기. 손흥민(30·토트넘)이 후반 30분 아크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리그 23호 골을 뽑아냈다.

슈팅을 쏜 위치는 페널티박스 왼쪽 45도, 일명 ‘손흥민 존(zone)’이었다. 아버지 손웅정(60)씨와 함께 2011년 강원도 춘천에서 5주간 매일 1000개의 슛을 때렸던 바로 그 지점이다. 당시 손흥민은 매일 오른발로 500번, 왼발로 500번의 슈팅을 하는 지옥훈련을 했다. ‘피·땀·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위치에서 ‘아시아 최초의 EPL 득점왕’이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이날 22, 23호 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23골)와 함께 공동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손흥민의 기록은 특히 페널티킥이 아닌 필드골로만 23골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더욱 높게 평가받는다.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을 지켜보기 위해 약 154만 명이 밤잠을 설쳤다. 자정을 넘은 심야 시간인데도 TV 순간최고시청률은 6.8%까지 치솟았다. 축구팬들은 “우리는 EPL 득점왕 손흥민 보유국”이라며 환호했다.

체육 철학자인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조국 교수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은 ‘아빠 찬스’ 논란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대조적으로 손흥민 부자는 ‘아빠 찬스의 전형’이자 ‘아빠 찬스는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 ① 아픈 청춘들의 희망
② 원칙 지킨 진정한 영웅
③ ‘나보다 우리’ 팀 먼저 생각

긍정·희망의 아이콘, 손흥민은 ‘MZ 세대 자기계발서’

‘단짝’ 해리 케인과 득점왕 트로피(골든 부트)를 든 손흥민(왼쪽). [사진 케인 SNS 캡처]

손웅정씨는 ‘부성(父性)’으로 혹독하게 아들을 훈련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반칙도, 불공정도 없었다. 우리 시대 청년들이 바라는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희 해설위원도 “한국 스포츠엔 한때 ‘쇼트트랙은 한국체대’ ‘유도는 용인대’처럼 ‘엘리트 라인’이 존재했다. 반면에 동북고를 중퇴한 손흥민은 지연·학연과 무관한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어릴 적 축구 본고장에 건너가 오로지 실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진정한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손흥민은 MZ세대들에겐 ‘신개념 자기계발서’다. 김 교수는 “2010년대 청년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요즘 세대는 유튜브에서 손흥민의 영상을 돌려보며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얻는다”고 했다.

2년간 영국 레스터셔 러프버러대에서 수학한 김 교수는 ‘손흥민 신드롬’을 ‘손흥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손흥민은 축구의 본고장 영국에서 ‘월드클래스’로 올라섰다. 차별이 심한 영국에서 동양인이 주눅들지 않고 ‘인싸’(인사이더)로서 무리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고 했다.

최종전에서 토트넘의 데얀 클루셉스키(22·스웨덴)는 슈팅 찬스에서 손흥민에게 패스하려다 발이 꼬여 넘어졌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29)도 손흥민을 도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토트넘 동료들은 23호 골을 터트린 손흥민을 번쩍 들어 올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손흥민은 라커룸에서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시즌을 함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토트넘 동료들은 손흥민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손흥민이 이토록 동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단지 영어와 독일어가 능숙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항상 웃으며 진심으로 대하는 그의 자세에 동료들도 탄복한 것이다. 살라와 득점왕 경쟁을 벌이던 손흥민은 페널티킥 찬스가 와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이 내세운 ‘전담 키커는 케인’이란 원칙을 손흥민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보다 우리’ ‘득점왕보다 팀 승리’를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토트넘 동료들도 하프타임 때 손흥민에게 다가가 “득점왕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한 것이다.

손흥민은 전 세계에 ‘굿 바이브’(좋은 기운)를 전하는 ‘에너자이저’이기도 하다. 김정효 교수는 “손흥민의 미소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거친 경기와 야유 속에서도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 미소와 긍정적인 자세가 영국인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고 했다.

한준희 위원은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역대 EPL 득점왕 티에리 앙리는 물론 1992년 EPL 출범 이전의 득점왕 케빈 키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며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을 포함해 총 180골을 넣었는데 워낙 성실하고 몸 관리를 잘하기에 앞으로 250골 고지에 오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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