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서로 보듬는 세상이 우리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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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민음사 펴냄)에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우리에게 묻는다.
요컨대, 불쉿 직업 종사자는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불편을 겪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친다.
이윤 놀이에 빠져 허무에 몸서리치는 불쉿 잡의 세상이 아니라 돌봄이 중심에 오는 세상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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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 대신 '돌봄 노동' 문화의 중심 둬야
‘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민음사 펴냄)에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우리에게 묻는다. 평소 각자 바쁘게 살아가기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재난이나 전쟁 같은 특수 상황을 맞으면 ‘필수 노동’이 전면에 드러난다. 코로나19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료 노동자가 없다면 병원은 존재하지 못한다. 청소 노동자가 없다면 건물은 쓰레기로 가득 찬다. 농부가 없다면 식량은 생산되지 않는다. 공장 노동자나 운송 노동자가 없다면 생필품은 공급되지 않는다. 배달 노동자 또는 택배 노동자가 없다면, 4차 산업혁명은 깡통 로봇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우리 삶은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불쉿 직업(bullshit job)은 그와 반대다. 불쉿 직업은 “맡은 업무가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게 해로워서, 그 일을 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존재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일”로, 종사자는 “그런 일이 아닌 척 떠벌여야 하는 의무”를 진 “유급 고용직”이다. 요컨대, 불쉿 직업 종사자는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불편을 겪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친다.
저자에 따르면 정치 컨설턴트, 로비스트, 기업 변호사, 광고·홍보·마케팅 전문가, 금융업 종사자 등이 해당한다. 이들의 일은 필수적이지 않기에 당장 자리를 비워도 회사 업무에 직접 타격을 주지 않는다. 이들은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일(제복 입은 하인)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임시 땜질꾼)하거나, 문제 해결과는 아무 상관 없는 서류를 양산(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하거나, 업무를 배당하고 자질구레하고 불필요한 업무를 생산(작업반장)하는 등 작업만 하기 때문이다.
금융, 보험, 부동산 등 관료제와 금융화가 결합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쉿 직업은 전체 직업의 40%에 이른다. 이들의 증가는 이윤 관리나 배분에 따른 서류 작성 등 비생산적 노동에 종사하는 중간관리자의 증식, 즉 경영 봉건주의로 이어진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거대한 지대 추출 시스템으로 변하면, 중세 때 마름이 농민보다 잘산 것처럼, 사회를 실제로 이롭게 하는 필수 노동과 돌봄 노동보다 불쉿 직업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존경도 받는 가치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수입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자기 일이 불필요함을 알면서 무언가 하고 있음을 보이려고 억지로 일을 짜내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가. 일찍이 카프카가 ‘벌레’나 ‘성’에서 보여주었듯, 불쉿 직업 종사자는 관료제의 노예가 된 채 노동에서 아무 자존도, 자부도 얻지 못하고 상처와 우울을 견디면서 때때로 찾아드는 소비의 쾌락에 기대어 살아갈 뿐이다. 일에는 기쁨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불쉿 잡 대신 돌봄 노동을 우리 문화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진정한 가치는 “상호 창조와 돌봄의 과정”에 있다. 돌봄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양육은 아이가 자유롭게 뛰놀게 돌보고, 간호는 환자가 병에서 자유롭게 돌보며, 교육은 학생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돌본다. 서로를 돌보는 노동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사회를 만든다. 이윤 놀이에 빠져 허무에 몸서리치는 불쉿 잡의 세상이 아니라 돌봄이 중심에 오는 세상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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