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군함 화재서 동료 구한 필리핀 청년, 美 최신 구축함 이름으로 부활
1915년 1월 21일 미 서부 캘리포니아만 해역에 있던 미 해군 군함 USS 샌디에이고함의 승조원들은 함장의 지시로 강도 높은 실전 훈련에 돌입했다. 최대 운항 속도로 끌어올린 상태로 네 시간 동안 쉼 없이 바다 위를 질주하며 기능 점검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부속품을 연결해주는 체인에 무리가 가면서 불꽃이 일었고 이는 화재로 이어졌다. 대규모 인명 참사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관 관리를 담당하던 부사관 텔레스포로 트리니다드(25)가 동료 선원들이 갇혀있는 선실로 뛰어들어갔다. 첫 번째 동료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을 때 폭발이 일어나면서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자신이 구조한 동료의 안전을 확인한 뒤 얼굴 화상에도 아랑곳 않고 불길과 연기 속으로 들어가 두 번째 동료를 구해냈다.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출신 청년의 활약상은 해군 내에서 전우애와 용기를 상징하는 모범 사례로 회자됐다. 긴급한 상황을 그린 삽화를 곁들인 기사가 40여년 뒤 해군 군보에 큼지막하게 실릴 정도였다. 그는 이 구조활동으로 주로 전사자에게 수여하는 미군 최고 영예 명예 훈장까지 받았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동료들을 구출했던 청년의 이름이 107년 뒤 미 군함에 헌정됐다.
미 해군이 향후 투입할 최신식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이름을 ‘USS 텔레스포로 트리니다드’로 결정했다고 최근 발표한 것이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장관은 이 같은 명명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군 사관학교 생도 시절 트리니다드 부사관의 활약상에 대해 처음 들었다”며 “해군 장관 취임 후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군함에 명명하고 싶었다”며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그러면서 “USS 텔레스포로 트리니다드함과 미래의 승조원들은 우리 해양 전력의 우월성과 풍부한 역사·문화 유산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 난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 미국에 정착했던 델 토로 장관은 미 주류사회 출신이 아닌 변방 출신이라는 점에서 트리니다드와 공통점이 있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던 1890년 중부 아클란에서 태어난 트리니다드는 미국 식민 통치 시절 입대해 일약 미 해군 영웅이 됐다. 그는 동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얼굴에 화상을 입었지만, 화마를 피해 살아남았다. 그는 1968년 필리핀 수도 마닐라 근교 카비테에서 78세에 세상을 떠났고 인근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미국 주재 필리핀 대사관도 USS 텔레스포로 트리니다드함 명명 소식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환영 성명을 냈다. 델 토로 해군장관은 미 연방정부 지정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5월)을 맞아 미 해군에서 활약했던 아시아계의 이름도 별도로 언급하며 이들의 헌신을 기렸다. 도산 안창호의 딸로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동양계 여성 장교였던 안수산(1915~2015)도 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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