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토바이 타기를 그만둔 이유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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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끼 밥보다 오토바이 타는 걸 더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처음 한 건 거리를 온통 배달 라이더가 채우고 있다는 실감을 한 다음이었다.
18분쯤 걸릴 거리라고 인공지능이 예측하고 있는데 만약 라이더 A씨가 신호를 어기고 인도로 달려서 12분 만에 배달에 성공했다면, 인공지능은 12분 안에 배달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다른 라이더들이 목숨 걸고 12분 내에 배달하면 인공지능은 10분 안에도 배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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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끼 밥보다 오토바이 타는 걸 더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폭주족이었던 것은 아니고, 무슨 오토바이 동호회 같은 것에 들어서 단체 라이딩을 다닌 것도 아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안달하거나 수많은 계단을 실족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갔는데 바로 눈앞에서 문이 닫혀 버리는 지하철 정거장에서 망연자실해 있다가, 한 푼 두 푼 모아서 산 자그마한 오토바이가 여유있게 나를 일터에 데려다 놓는 것이 고맙고도 기특했다. 2003년부터 타기 시작했으니 근 20년을 탄 셈이다.
하지만 고민 끝에, 1년 전쯤 오토바이를 처분했다. 팔 한쪽을 떼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처음 한 건 거리를 온통 배달 라이더가 채우고 있다는 실감을 한 다음이었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근심스러웠다. 배달 라이더들이 '콜'을 기다려서 주어지는 일감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정했다. 18분쯤 걸릴 거리라고 인공지능이 예측하고 있는데 만약 라이더 A씨가 신호를 어기고 인도로 달려서 12분 만에 배달에 성공했다면, 인공지능은 12분 안에 배달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다른 라이더들이 목숨 걸고 12분 내에 배달하면 인공지능은 10분 안에도 배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러한 인공지능 플랫폼에 대해 알게 되자, 왜 요즘 교통법규를 엄청나게 어기는 배달 라이더가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그분들과 부딪힐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오토바이를 타지 않기로 했다. 20년 탔으면 됐어! 만일 라이더와 사고가 난다면 나야 보험을 들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분들이 그런 보험을 들었을까?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게다가 우리나라의 교통법규는 참 희한하다. 자동차를 몰 수 있으면 125cc 이하의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까닭이 대체 무엇인가?
예전 나는 이런 우편물을 받은 적도 있다. 너 이종 소형 면허 갖고 있잖니? 근데 무사고인 걸 보니까 원한다면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있는 면허증으로 바꿔 줄게! 대체 내가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지 누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자칫 국가가 허락한 살인면허가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발급해 주겠다는 말인가?
요즘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차를 몰고 가면서 배달 라이더들이 조금만 약삭빠르게 운전하면 저 '딸배(배달 종사자를 비하하는 말)'를 보라며 잔뜩 화를 낸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집에 들어가 배달음식을 주문하게 되면 180도 변해서 또 화를 낸다. 무조건 내 음식은 빨리 와야 한다. 신호를 어기든, 인도로 질주하든, '딸배' 주제에 왜 이리 늦냐는 것이다. 라이더가 도착하면 삿대질부터 한다. 야, 내가 언제 시킨 줄 알아? 이 '시키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쓰지 않았으면 한다. 언어는 정신을 지배한다. '시키다'라는 말은 마치 상전이 종에게 명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의식적으로 '시키다'에 그런 정서가 묻어 있기 때문에 시킨다는 표현을 쓸 때 함부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주문했다' '부탁했다' 등 동등한 관계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얼마든지 더 있다. 음식점 주인에게도, 라이더에게도 '시키지' 말자.
김현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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