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체육인 병역특례조항' 찬찬히 따져볼 때

박미향 2022. 5. 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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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11월22일(현지시각)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받은 뒤 자세를 잡고 있다. 하이브 제공

[편집국에서] 박미향 | 문화부장

지난 4일 문화체육관광부 기자실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황희 문체부 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회에 계류 중인 ‘대중문화예술인 예술요원 편입제도’를 신설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방탄소년단 일부 멤버의 군 입대를 앞두고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방탄소년단은 콘서트 1회당 1조2천억원에 달하는 생산유발효과를 낳고 해외 유수의 음악상을 석권하는 등 세계를 울리는 문화적 파급력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20대 청년들에게 호소드린다”며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양해해줄 것을 간청하기도 했다.

통상 한 부처를 책임지는 장관의 브리핑은 주요 현안에 대한 결정이나 변경 등을 알리는 것이기에 담당 기자로서 반드시 챙긴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은 임기가 고작 닷새 남은 장관의 실효성 없는 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 거부 뜻을 밝혔다. 정치인 출신 장관의 자기 홍보용 꼼수라는 게 빤히 읽혀서다. 결국 황 장관은 이날 텅 빈 기자회견실에서 준비한 자료를 휭하니 읽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누구를 위한 병역법 개정인가.

대중예술인을 병역특례 대상으로 포함하는 병역법 개정안은 윤상현 의원 대표발의안, 성일종 의원 대표발의안, 안민석 의원 대표발의안 등 3개가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은 2020년 새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병역은 당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응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방탄소년단은 공식적으로 군 입대 연기나 면제를 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들의 군 문제를 언급하며 논란에 불을 지핀 건 여야 정치권이다.

법 개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개정으로 얻을 수확이 무엇인지, 개정된 법으로 피해를 보는 이는 없는지, 국민 다수에게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는 개정인지 등 따져볼 게 여럿이다. 제대로 된 공청회 한번 추진한 적 없는 정치권이 방탄소년단 인기에 편승해 ‘일단 지르고 보자’ 식 법안 발의를 한 것은 속이 빤히 보이는 꼼수로 보인다. 더구나 병역법은 공정 화두의 중심에 서 있는 20대 청년들의 뜨거운 관심사이자 우리 사회의 공평한 기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촘촘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법안을 통과시키면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만들어진 병역특례 조항은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국가인지도가 낮은 만큼 스포츠·예술 분야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와 예술인들을 통해 ‘한국’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첫 수혜자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양정모 레슬링 선수였다.

그 뒤 49년이 흐르면서 ‘코리아’는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나라가 됐다. 한국은 10위권 경제대국이 됐고 스포츠뿐만 아니라 ‘케이(K) 콘텐츠’로 세계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옥> 등 여러 작품이 이미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흥민, 윤여정,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은 더는 한국인만의 스타가 아니다. 기존 국위선양이라는 애초 제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말이다.

이제야말로 낡은 법을 꼼꼼히 살펴볼 때가 된 것이다. 대중문화 스타도 병역면제 대상에 포함한다면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방탄소년단은 되고 스트레이키즈는 안 된다면 말이 되겠는가!) 미국 음악차트 빌보드나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만약 경제적 효과 등을 기준 삼는다면 그 정도는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올림픽 금메달은 국제적인 콩쿠르 우승과 왜 동급인지 등 점검해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법 개정에 부정적인 국방부도 마냥 ‘노’만 외칠 게 아니라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젠 메달을 딴 체육인이라고 해도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포츠계 인사도 있다. 이제야말로 병역특례 조항을 찬찬히 살펴볼 때가 됐다.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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