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소리로 그린 '공명회화'..공기가 만든 추상화

김보라 2022. 5.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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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 한남동 갤러리 타데우스로팍.

도자기들이 매달려 있는 전시장 중앙에 두 여성이 입을 맞춘 채 서 있다.

'입을 위한 작곡'이란 이름의 이 퍼포먼스는 영국 현대미술가 올리버 비어(37·사진)의 국내 첫 개인전 '공명-두 개의 음'에 나온 작품 중 하나다.

작가의 회화 작품명은 모두 '공명 회화'라고 쓰여 있지만, 그 옆엔 시적 부제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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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현대미술가 올리버 비어 개인전
입술 맞댄채 코로 나온 호흡
캔버스 뒤에서 진동시켜 그려
"소리 어울리면 눈부신 결과 나와"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 한남동 갤러리 타데우스로팍. 도자기들이 매달려 있는 전시장 중앙에 두 여성이 입을 맞춘 채 서 있다. 두 여성 사이에 스탠딩 마이크가 자리잡는다. 정적이 흐르자 사람들은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한다. 3분 뒤 이들은 맞닿은 입술을 떼고 자리를 떠난다.

‘입을 위한 작곡’이란 이름의 이 퍼포먼스는 영국 현대미술가 올리버 비어(37·사진)의 국내 첫 개인전 ‘공명-두 개의 음’에 나온 작품 중 하나다. 다음달 11일까지 매주 토요일 같은 시간에 열린다. 두 인체를 하나의 악기로 결합한 게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어의 작품은 ‘공명 회화’로 불린다. 두 개의 음이 만들어내는 공명,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명, 전시장과 관람객이 만들어내는 공명 모두 작품이 된다. 갤러리에 걸린 도자기 입구엔 마이크가 설치돼 있어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파장을 들을 수 있다.

벽에 걸린 푸른색 회화 작품들은 손으로 그린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소리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공기는 음파를 만들고, 음파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며 “두 개의 음이 만나 화성을 이루는 음악처럼 공기의 기하학적 흐름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비어는 10여 년 전부터 공명을 연구했다. 드럼 위에 소리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밀가루 입자가 그 시작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작업하던 2015년 동료의 도자기 컬렉션을 구경하다 우연히 도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오묘한 소리에 집중했다. 그는 이 소리를 채집했다. 캔버스 위에 파란색 안료 가루를 뿌리고 캔버스 아래 대형 스피커를 설치해 소리를 증폭시키자 가루들은 춤을 췄다.

그는 붓 없이 소리로만 그림을 그린다. 마치 뮤지컬 퍼포먼스를 연상케 하는 화성을 찾아냈다. 그 결과 깃털이나 바람, 구름이 만들어내는 물결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비어는 “스피커가 공기를 움직이고, 공기가 캔버스 위 안료를 움직이면서 느슨하게 올려진 안료들은 세밀하고 정교하게 하나의 형태를 완성해나갔다”고 했다.

공명 회화는 이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며 완성된다. 공기 속 기하학적 진동이 그림을 그린다. 불협화음이 있을 땐 지루하고 특징 없는 문양이 나오고, 알맞은 소리가 어우러지면 눈부신 결과물이 나왔다.

작가의 회화 작품명은 모두 ‘공명 회화’라고 쓰여 있지만, 그 옆엔 시적 부제가 붙어 있다. ‘사랑이 내리다’ ‘흐름’ ‘나는 멸시받는 아내라오’ ‘첫눈에 반한 사랑’ 등이다. 공기와 소리가 만들어낸 추상들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비어는 영국 현대음악아카데미에서 음악 작곡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했다. 파리 소르본대에선 영화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다양한 예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각, 설치 작품, 영상, 몰입형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뉴욕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루이비통재단, 팔레드도쿄 등에서 전시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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