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채굴'..새삼 고마운 근로의 가치

임상균 2022. 5. 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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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자자~ 이제 ‘원화채굴’하러 갑시다.”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지 몰랐다. 최근 회사 젊은 직원들 몇몇과 점심을 먹었는데, 커피를 한 잔씩 하더니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무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그제야 ‘원화채굴’이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는 일을 빗대는 신조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코인을 얻기 위해 진행하는 활동인 ‘채굴’이라는 단어에 원화를 합쳐 만들었다.

“주식도 떨어지고, 코인은 나락으로 가고 있으니 열심히 일해서 월급이라도 벌어야죠.”

한 직원의 푸념 섞인 설명을 들으니 근로소득을 굳이 ‘원화채굴’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이유를 알 만했다.

“제 친구는 지난 주말에 ‘블럭체인’으로 10만원을 벌었어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한마디 거든다. 얼핏 첨단 기술로 코인 채굴에 성공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아니라 ‘블럭’이다. 영어는 사각형 덩어리를 뜻하는 ‘Block’으로 같지만 뜻은 천양지차다.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벽돌(블럭)을 쌓아올려서 일당 10만원을 받았다는 얘기다.

“힘없는 저희는 온라인 폐지 줍기라도 열심히 해야 해요.” 이번에는 젊은 여직원의 푸념이다.

‘온라인 폐지 줍기’란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각종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쿠폰, 포인트, 적립금 등을 모으는 활동을 뜻한다.

모두 최근 들어 젊은 층 사이에 유행하는 신조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초호황을 누리던 투자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만들어진 말들이다.

실제 자산 시장은 종류를 가릴 것 없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 한국 증시 코스피는 지난해 6월 25일 3302.84를 최고점으로 벌써 11개월째 흘러내리고 있다. 부진한 한국 증시를 떠나 ‘기회의 땅’이라며 미국으로 몰려갔다. 공교롭게 그때부터 나스닥이 무너졌다. 올해 첫 거래일 1만5832.8로 최고치를 찍은 후 4개월여 만에 28% 급락이다.

MZ세대들이 부푼 꿈을 안고 덤벼들었던 암호화폐 시장은 더욱 처참하다. 안전자산인줄 알았던 채권 가격도 국채 10년물 기준으로 볼 때 2020년 가을부터 줄곧 내림세를 타고 있다.

최근 4~5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주택을 소유할 수 없었던 청년층은 스스로를 ‘벼락거지’라 부르며 낙담했다. 때마침 코로나19를 벗어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대거 풀었고, 덕분에 주식, 코인 등 투자자산 가치의 급등이 펼쳐졌다. 청년층은 벼락거지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달려들었다. 일부는 ‘대박’의 희열을 느꼈겠지만 대부분은 주식과 코인에서도 쓰라린 좌절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요즘 신조어를 보면 근로의 가치에 다시 눈을 돌리는 느낌이다. 투자 시장에서의 손실과 좌절을 만회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근로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그나마 소득이다.

월급으로 들어오는 현금이야말로 자산을 대체할 수 있는 최고의 근로 가치다.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연 3% 임대수익률을 가정할 때 12억원짜리 상가를 보유한 거나 마찬가지다. 능력을 키우고 열심히 일해 월급이 400만원으로 오른다면 보유한 상가가 16억원으로 뛰어올랐다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은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자산이다. 투자 시장에서의 좌절을 잠시나마 묻어두고 자신의 가치에 투자할 때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0호 (2022.05.25~2022.05.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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