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길어도 될까? 대만과 한국, 전공의 노동시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입력 2022. 5. 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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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과 한국, 전공의 노동시간 비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국 전공의들의 장시간 노동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주 48시간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의사 교육 및 훈련을 달성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pixabay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가장 심각한 과로 요인은 '장시간 노동'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시간 일해도 매우 빠른 노동 속도, 화장실 갈 틈도 없는 노동 밀도, 강도 높은 감정 노동, 늘 아프고 힘든 사람을 만나야 하고 본인의 처치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직무스트레스 등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이 심각한 직군이 있다. 병원에서 수련 과정에 있는 전공의다.

특별법으로 주 80시간, 한국 전공의

2019년 2월 1일 당직을 서던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가 사망했다. 병원은 사망 직후 수련환경에는 문제가 없었고 사망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이 제출한 전공의 근무표가 조작된 것이 드러났다. 병원 측은 1월 7일부터 13일까지 사망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주 87시간, 최대 연속 근무 35시간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 주 근무시간 118시간, 최대 연속 근무 59시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 위반이었다.

전공의들의 무제한 노동과 수련생으로서의 낮은 지위는, 교수로부터 전공의가 폭력을 당하거나 전공의가 다시 다른 병원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왜곡된 병원 문화로도 나타났다. 또 환자 안전이나 의료 질 저하 문제를 대두시키기도 했다. 이에 2015년 12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수련 시간 단축 조항은 병원의 준비 기간을 고려하여 법 제정 2년 뒤인 2017년 12월부터야 시행되었다. 

이 법은 전공의 수련 시간이 '4주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지만,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1주일에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고 하여 주 88시간까지 수련/노동이 가능하다. 연속 근무와 관련하여서도 연속 36시간 이내로 근무하도록 하나, 응급 상황에서는 연속 40시간까지 수련할 수 있도록 하여 장시간 노동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근로기준법 적용받아도 월 320시간 일하는 대만 전공의

대만에서는 의사를 제외한 모든 의료진에 대해 이미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고 있어, 보건복지부는 2019년 9월부터 고용된 의사 모두를 근로기준법에 포함하고자 했다. 그러나 수차례 협의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전공의(공공의료기관 제외)만 우선 포함하기로 했다. 전공의는 2019년 9월부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노사 간 탄력적 근로시간을 약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2019년 7월 "레지던트 의사의 노동권익 및 근로시간 보장을 위한 지침"을 개정했다. 그 결과 전공의의 근무시간, 휴식, 휴가 등에 대해 실질적 행정규칙의 효력을 가지는 방식으로 규제하고 행정지도 하고 있다.

노동부의 공고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전공의는 총 6000여 명이다. 전공의가 의료기관의 지휘 감독 하에 해당 기관의 시설 또는 지정된 장소에서 노무를 제공하거나 노무 제공을 기다리는 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의료기관에서 요구하는 임상, 교육 및 회의 등 활동은 모두 계산에 포함한다. 다만, 의료기관의 지배를 받지 않는 휴게시간, 자습, 회의 준비 시간 및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교육 또는 회의, 불출석으로 인해 인사고과 혹은 처벌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는 제외한다.

이 근로시간은 교대제의 경우 월 234시간, 비교대제의 경우 283시간으로 규정돼 있지만, 둘 다 연장근무를 포함하면 월 최대 32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근무 사이에는 최소 10 시간의 휴식 시간이 있어야 하고, 연장 근로시간에 대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한다. 대만에서도 대부분의 병원이 전공의 노동시간 제한을 지키는 것처럼 보고하고 있지만, 전공의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이보다 길게 나와 병원 보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노동시간 제한 예외는 최소화되어야

수련을 받아야 하니까 장시간 노동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나, 노동시간을 속이는 병원 행태 등 서로 다른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 비슷한 모습에 실소가 터진다. 한국이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미국에서도 주 80시간 수련 시간 제한 이후 전문의 훈련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주 48시간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의사 교육 및 훈련을 달성하고 있다.

전공의 뿐 아니다. 전문, 고소득 노동자는 노동시간 제한에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자꾸 나온다. 고소득이라, 훈련받아야 해서, 의사니까, 전문직이니까 노동시간 제한 없이 일해야 한다는 쉬운 주장 대신, 그들도 적정 시간 일하고 훈련받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일 외에 쉬고, 사랑하고, 살아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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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동아시아과로사감시 팀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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