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안쓰러운' 타이거 우즈, 호건·벤추리의 모습이 보인다!

방민준 2022. 5. 23. 12: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가 3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가 PGA 챔피언십 3라운드를 마치고 기권했다. 우즈가 메이저대회 도중 기권한 것은 프로로 나선 이후 처음이다.



우즈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CC(파70)에서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9오버파 79타를 쳤다. PGA 챔피언십에서 거둔 우즈 개인 최악의 스코어다.



 



3라운드 중간합계 12오버파 222타를 친 우즈는 최하위(공동 76위)로 추락했고 결국 기권했다. 2라운드를 마친 뒤 다리 통증을 호소한 우즈는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3라운드를 마쳤으나 더 이상 라운드를 이어가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고통스런 얼굴로 경기하는 우즈의 모습엔 전설의 슈퍼스타 벤 호건(1912~1997)과 켄 벤추리(1931~2013)가 오버랩 된다.



 



텍사스 시골에서 태어나 1931년 프로로 전향해 1946, 1948년 PGA챔피언십을 우승하며 당대 최고의 골퍼로 인기가 치솟던 호건은 1949년 승용차를 타고 가다 버스와 충돌하는 치명적 사고를 당했다. 충돌 순간 조수석에 탔던 부인을 보호하려 운전대를 돌리는 바람에 부상이 더 컸다. 다리 정맥의 혈액 응고로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골프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눈물겨운 재활과정을 거쳐 이듬해인 1950년 US오픈에서 출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현기증과 싸우며 기적 같은 우승을 일궈냈다.
194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그는 1950년에 이어 1951년, 1953년 등 US오픈만 네 번이나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3년 디 오픈과 US오픈, 마스터스에서도 우승했다.



 



18홀 평균 최저타 선수에게 수여하는 바든 트로피를 3번이나 받았고 다섯 차례나 상금왕에 올랐다. 메이저 9승을 포함해 PGA투어 통산 63승을 올렸다.
교통사고 후 재활에 집중하면서 대회 참가를 줄여 매년 4~5개 대회에만 참가해 재기에 성공했다.



왼손잡이였으나 왼손잡이 골프채를 구할 수 없어 오른손잡이 클럽으로 연습한 그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스윙을 개발, '모던 골프'라는 명저를 남겼다.
벤 호건의 감동적 재기 스토리는 'Follow the Sun(태양을 좇아서)'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 프로골프의 슈퍼스타 켄 벤추리는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명성도 시들고 그의 이름조차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잊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1964년 US오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최근 성적이 시원찮아 초청자 명단에서도 빠져 어쩔 수 없이 지역 선발대회를 거쳐 출전권을 따야 했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그는 지역 선발대회에 참가하며 "하느님, 저를 이 지경에서 데려가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우승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직도 열심히 배우고 연습한 대로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만 허락해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



 



202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가 1라운드 때 고통 속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그가 지역 선발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위해 클럽하우스를 나서는데 한 남자가 자기 아들에게 "저 사람이 켄 벤추리란다. 왕년의 슈퍼스타지."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벤추리는 그 남자가 자기를 '왕년의 슈퍼스타'라고 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US오픈은 워싱턴DC의 콩그래셔널CC에서 열렸다. 마지막 3일째 날엔 하루에 36홀을 도는데 무더위와 습한 공기로 벤추리는 심한 탈수증과 열사병에 시달렸다. 14번 홀에서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17번 홀 그린에서는 2피트 짜리 퍼트를 놓고 홀이 세 개로 보여 버디를 놓쳤다.



 



전반 18홀을 끝냈을 때 US오픈 의무관은 그에게 18홀을 더 도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기권을 권고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이미 죽어가는 몸이다. 특별히 찾아가 죽을 곳도 없다. 제발 이곳에서 죽도록 놔두면 좋겠다"고 말하고 후반 18홀을 돌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클럽 소속 의사가 얼음주머니, 비상약과 소금 등을 챙겨 따라나섰고 USGA 회장 조셉 C. 다이도 벤추리를 보살폈다.
10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벤추리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USGA 회장이 그를 격려하기 위해 "스코어가 궁금하지 않은가?"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벤추리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스코어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저 있는 힘을 다해 한 샷 한 샷 할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리더보드를 외면했다.



17번 홀 티샷을 한 후 벤추리는 여전히 1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거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회장님, 저에게 지연 플레이로 벌점 두 타를 주십시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습니다. 천천히 걸어갈게요."



 



회장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이봐 여기서부터 18번 홀 그린까지는 내리막길이야. 얼굴을 들고 힘 있게 걸어. 그래야 갤러리들이 챔피언의 얼굴을 볼 게 아닌가?"



18홀에서 우승 퍼트를 마친 벤추리는 그대로 그린에 쓰러졌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하느님 제가 US오픈에서 우승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넘쳐 흘렀다.
그가 사투를 벌이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끌어안은 장면은 60년대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벤추리는 그해 2승을 추가하며 '올해의 선수상'을 획득,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후 2승을 추가해 통산 14승을 기록하고 1967년 은퇴, 2013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965년부터 마지막 36라운드를 하루에 돌던 것을 하루 더 늘려 나흘간 72홀로 치르도록 변경된 것도 열사병으로 쓰러진 켄 벤투리 덕분이다.



 



202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가 2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치명적 교통사고를 당한 뒤 큰 수술과 눈물겨운 재활을 거쳐 다시 필드로 돌아와 '황제의 귀환'을 시도하는 타이거 우즈의 모습은 벤 호건이나 켄 벤추리의 재림(再臨)과 너무 닮았다.



이미 골프 사상 최고의 골프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가 고통을 견디며 보여주는 재기의 몸부림은 벤 호건과 켄 벤추리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두 영웅의 재기 스토리는 우즈에게 이대로 물러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샘 스니드와 공유하고 있는 PGA투어 통산 82승, 잭 니클라우스(메이저 18승)에 3승 뒤진 메이저 우승기록을 뛰어넘는 것에 구속받지 않고 오직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일념이 그를 지배하는 것 같다.



 



한편 23일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저스틴 토머스(29·미국)가 대역전극을 펼쳐 윌 잴러토리스(25·미국)와 연장 접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2017년 PGA챔피언십 이후 5년 만의 메이저 우승이고 통산 15승째다.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9언더파)였던 신인 미토 페레이라(27·칠레)에겐 통한의 마지막 라운드였다. 
2020-2021시즌 콘페리투어에서 3승을 거두고 PGA투어로 올라온 페레이라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으나 더블보기를 하면서 연장전 진출도 좌절됐다.



AT&T 바이런 넬슨 2연패의 기세를 이어가려던 이경훈(31)은 공동 41위, 김시우(27)는 공동 60위를 기록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Copyright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