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에 방치된 연금개혁..'자기부담' 원칙 깨고 정부가 적자 보전 중 [스토리텔링경제]
8대 사회보험 적자가 누적되면서 정부의 ‘적자보전금’ 지출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11조원대였던 적자보전금은 올해 17조원대로 급격히 늘어났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면 국민연금 적자까지 정부가 떠안아야 할 상황에 내몰릴 판국이다.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받는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는 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한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사회보험 구조를 뜯어고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개혁 없이는 세금으로 적자를 막는 구조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2022년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8대 사회보험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하는 예산은 17조1375억원에 달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서 발생한 적자를 보전하는 데만 4조9369억원이 소요된다. 나머지(12조2006억원)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노인장기요양보험자 가입자 중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필요한 금액이다.
문제는 적자 보전을 위한 지출이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만 해도 11조1004억원이었던 금액은 5년 만에 6조371억원이 늘어났다. 연평균 1조2000억원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적자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예정처는 2024년이면 정부가 부담해야 할 적자가 ‘4대강 사업’ 예산과 맞먹는 수준인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에 불과하다. 예상보다 빠르게 연금을 낼 사람들이 줄수록 기금 소진 시기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2일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 모두 국민연금을 필두로 연금개혁을 외쳐왔다. 2005년 이후 9%에서 멈춘 요율을 손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정치 논리가 작용하면서 이 외침이 성과를 거둔 사례는 전무하다. 국민연금 요율을 올려 더 많이 내게 하면 청년층 표심 이반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이 역시 장년층 표심이 돌아설 수 있다는 이유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표심 잡기’ 걱정이 덜한 지금이 적기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음 달 1일 지방선거 이후 2024년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 표심에 대한 걱정 없이 사회적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들 다수가 연금 개혁 필요성에 동의한 만큼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사회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 이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이자 또는 투자 수익액으로 지급하는 상황이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으로 연금을 지급하기 전에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상된 요율이 적용되는 시기가 빨라질수록 누적된 기금으로부터 나오는 이자 수익이 복리로 적용돼 향후에 요율 인상을 할 유인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과도한 인상은 사용자 단체 반발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0.5~1.0%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12~13% 수준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우선 결정한 뒤 그에 맞는 요율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을 보장할 것인지 우선 결정하고 그 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보험료를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센터장은 “현행 소득대체율(2022ᅟ년 기준 43%)보다 소득대체율을 더 낮춰서는 안 된다”며 “수십 년간 국민연금을 낸 사람이 생계급여 등 공공부조와 비슷한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함께 공적연금 역시 한 번 더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무원연금 등 적자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연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공무원이 박봉이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도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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