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기후악당?' 근거가 왜 이렇게 다른가 봤더니

김다은 기자 입력 2022. 5. 2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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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말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가축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실제 축산업이 만들어내는 탄소 배출량은 어느 정도나 될까.
축산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두고 축산업계와 기후운동가 사이에 주장이 엇갈린다. 사진은 경기도 한 축산 농가의 모습. ⓒ공동취재

고기를 먹으며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육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채식주의자와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불편한 적이 있는가? ‘기후위기’ 이야기가 가끔 껄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대형마트에서 콩으로 만든 대체육을 볼 때는 어떤 감정이 드는가?

기후위기와 육식의 연관성이 주목받게 된 때는 2006년 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가축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였다. 축산업이 모든 운송업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며,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CO₂eq, 다양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 보고서는 지금도 ‘탈육식이야말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후행동’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보고서 발표가 곧장 대대적인 채식 운동을 불러일으킨 건 아니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부터 일어났다. 미국을 필두로 ‘2050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다. 지난해 5월, 프랑스에서는 ‘기후와 복원 법안’이 통과됐다. 공립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 없는 메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 달 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육류와 유제품을 2030년까지 20%, 2050년까지 35% 이상 줄이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영국 의회에 제출했다.

한국은 어떨까? 2020년 10월28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으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21년 5월29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으며 같은 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25일에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도 시행됐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초중고 학교에서 ‘그린 급식의 날(채식의 날)’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일방적 채식주의 확산 정책이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조장한다.” 인천·울산·부산·전북·광주 등에서도 초중고 채식 급식을 도입했다. 군대에서도 채식 식단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동물권과 기후위기로 채식을 선택하는 ‘가치지향적’ 채식 인구도 늘어났다.

육식은 기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육식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나쁜 행동인가? 아니면, 채식 확산이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조장하는 위험하고 불손한 일인가?

니콜렛 한 니먼은 축산업이 일으키는 환경파괴를 고발하며 공장식 축산 반대 캠페인을 이끌어온 미국 환경단체의 수석변호사였다. 그런 그가 저술해 최근 국내에 번역된 책이 〈소고기를 위한 변론〉(갈매나무 펴냄)이다. 니먼은 왜곡된 통계로 소와 소고기가 비난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소를 키우는 목장주이다. 기후위기의 주원인이라는 혐의를 받는 ‘소와 소고기의 변호사’를 자처하며 활동하고 있다.

니먼은 소와 소고기가 지구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비난을 반박한다. ‘탈육식’ 운동은 “극히 단순화한 (기후위기) 해법들”이며 “이제 버릴 때가 됐다”라고 말한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쏟아야 할 에너지를, 소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며 골몰하는 데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EPA

“전체 배출량 18%는 과장된 수치”

실제 축산업계와 비거니즘(채식 지향) 기후운동가들은 각자의 주장을 펼 때 서로 다른 통계를 근거로 삼는다. 예컨대 2006년 FAO가 발표한, ‘축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라는 전제에 축산업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농축산업 현안을 다루는 인터넷 언론사 〈팜인사이트〉의 김재민 편집장은 “18%라는 수치 안에는 축산물 생산을 위한 사료 재배부터 사료 가공, 운송, 유통과정, 판매,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탄소량이 다 합해져 있다. 반면 비교 대상이 된 운송업 분야의 탄소 배출량은 운전 중 연소되는 화석연료 배출량만을 합산했다. 아주 불공정한 비교다”라고 말했다.

니먼은 〈소고기를 위한 변론〉에서,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 동물운동가, 심지어 축산업 종사자 역시 소와 기후의 연관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가축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가축을 어떻게 사육하느냐에 따라, 어떤 수치를 통계치에 합산하느냐에 따라 정량적 진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구가 부적절한 방목에 시달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소 사육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도 맞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이 믿는 방식이나 정도로는 아니다.”

실제 축산업이 만들어내는 탄소 배출량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재민 〈팜인사이트〉 편집장은 “전후방 산업을 포함한 축산 공급망 전체가 아닌, 축산업 자체만의 ‘직접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면 전 세계 배출량에서는 약 7%, 국내 전체에서는 약 1.3%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김 편집장은 환경부가 작성한 ‘2021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 보고서’를 그 근거로 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온실가스의 총배출량은 7억140만t CO₂eq이다. 이 가운데 농업 분야는 2100만t CO₂eq로 총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축산 부문은 ‘장내 발효(460만t CO₂eq)’와 ‘가축분뇨 처리(490만t CO₂eq)’를 합산한 950만t CO₂eq에 불과하다. 약 1.3%이다.

그러나 이 수치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축산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단 두 가지 지수로 산출한다. 첫 번째, 장내 발효에 의한 온실가스(CH4·메탄)는 반추동물인 소의 트림과 방귀로 대부분 발생된다. 두 번째, 가축분뇨 처리 과정에 의한 온실가스는 가축의 분뇨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될 때 생긴다. 이 과정에서 메탄과 아산화질소(N₂O)가 발생한다. 이산화탄소에 비해 메탄은 약 21배, 아산화질소는 약 310배 높은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이 ‘장내 발효’와 ‘분뇨 처리’ 두 가지 지수만으로 축산업의 온실가스 발생량을 파악하는 것은 적정한가. 국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6년 IPCC의 지침 기준 3단계 중 가장 기본적 수준인 1단계에 따라 계산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고도화되고 정확한 수치로 계산이 가능하다. 어떤 단계의 지침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도출되는 탄소 배출량 수치에 차이가 발생한다.

주요 육류 생산국인 브라질에서는 대규모 축산을 위해 열대우림 방화·채벌·개간이 자주 일어난다. ⓒAFP PHOTO

탄소 배출 외주화에 기댄 ‘육류 생활’

양승학 국립축산과학원 농업연구사는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양 연구사는 “한국은 현재 1단계 지침을 적용하는데, 2단계를 적용하는 국가들은 저마다 ‘국가 고유 배출계수’를 개발해 국제 승인을 받는다. 가축이 섭취하는 사료 종류와 사육관리 방식 등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국 상황에 맞춘 정밀한 측정 지수를 도입하는 것이다. 한국도 국가 고유 배출계수를 개발해 배출량 값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관대한 계산법에 따라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과소 측정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기후운동가들은 ‘탄소 배출량의 외주화’를 지적한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는 “탄소 배출량 1.3%라는 수치는 사실상 축산업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을 외주화해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력을 축소한 결과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육류 30% 이상을 수입하고, 가축 사료 90% 이상을 수입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육류 생활’은 국내에서 사육되는 가축과 가축 사료만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이 같은 ‘축산업 탄소 배출 외주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모든 범위를 아우른 좀 더 정확한 측정치는 없는 걸까?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환경성적표지’ 제도를 운영하며 특정 제품군의 환경 영향(탄소발자국·물발자국·오존층 영향·산성비 등)을 공개하고 있다. 특히 원료 채취·생산·유통·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한다. 올해 3월28일까지 342개 기업에서 생산하는 1561개 제품이 환경성적표지 인증을 받았다. 이 대상에 1차 농축수산물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그 이유를 “1차 농축수산물은 농림청에서 관리하므로, 중복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소비자에게 혼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농림청은 축산물의 탄소 배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농림청은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를 실시한다. 저탄소 농축산업 기술을 활용해 작물과 가축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경우 ‘저탄소’ 인증을 달아준다. 현재 농림청에서 기준을 설정해둔 품목은 옥수수, 딸기, 대추 등 61가지에 달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도 축산물은 단 하나도 없다. 농식품부 농촌재생에너지팀 업무 담당 공무원은 “축산물 온실가스 배출 기준은 앞으로 설정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공산품·농산물과 달리 축산물 품목의 탄소 배출량은 국내에서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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