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배우자" 국문과 대학원생 10명중 넷 외국인

강다은 기자 2022. 5.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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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국내 학생들은 "취업 안돼" 기피

지난 18일 오전 11시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문대학의 ‘한국현대문학과 이론’ 강의실. 한 일본인 학생이 최윤 작가의 1970년대 소설 ‘회색 눈사람’에 드러난 돌봄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발표했다. 이후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의 토론이 시작됐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 22명 중 12명은 터키, 이집트, 중국 등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김유중 교수는 “3~4년 전만 해도 국문과 수업에 외국인 학생들이 있는 게 어색하고 난감했는데, 이제는 이런 풍경이 너무나 익숙하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국어·국문학 계열 대학원 재적인원의 40%가 외국인이다. 국내 국어·국문학 계열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려고 공부하는 학생 10명 중 4명이 외국인이란 뜻이다. 5년 전인 2016년에는 32%였다.

국내에서는 취업이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 분야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는 걸 기피하는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반면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K문화 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나라 밖에서는 한국 대학원까지 와서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 결과 국어·국문학계열 대학원생 중 외국인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문과 대학생의 현실은 ‘문송합니다’라는 말로 요약되곤 했다. ‘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으로, 문과를 나와 취업이 어려운 시대 상황이 반영됐다. 실제 전국 국어·국문학 계열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은 2016년 2715명이었지만 작년 2534명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 학생은 1258명에서 1677명으로 33% 늘었다.

서울대의 경우 올해 1학기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109명 중 43명(39%)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서울대 인문대 관계자는 “외국인 비율이 역대 최고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고려대도 국어·국문학 계열 대학원생 중 35%가 14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연세대도 이 비율이 32%로, 22국 출신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상당수가 청소년기 이후 한국 드라마나 소설, 아이돌 그룹 등에 영향을 받아 유학을 온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한국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터키 출신 에즈기 젱기제르(31)씨는 “한국 드라마 ‘해신’ ‘대장금’을 보며 한국어에 관심을 생겨 한국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됐다”며 “학위 딴 후엔 터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문화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자리를 잡으면서, 특히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커졌다. 4학기째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는 인도네시아인 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타라니(31)씨는 “‘좋은 직장’으로 여겨지는 한국 기업 취업에 유리해, 인도네시아에 있는 대학에서도 한국어학과는 가장 인기 있는 과 중 하나”라고 했다. 작년 9월엔 유럽 최초로 러시아 카잔연방대에 한국어 석·박사 과정이 생기는 등 해외 대학에서도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외국인 학생이 늘면서 국내 대학원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는 학위논문 심사를 받는 유학생에게 한국 학생을 붙여줘 심사 과정에서 도움을 받게 튜터링을 지원한다. 시험에 출제된 국어학 관련 학술용어에 영어 병기를 하거나, 영어로 수업 자료를 만드는 학교도 많다. 서울대 인문대 박진호 부학장(국어국문학과 교수)은 “한국에서 유학을 했던 제자들이 해외 명문 대학의 교수가 돼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으면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을 분석할 수 있어 연구와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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