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치솟는 물가·불안한 환율' 숙제 넘겨받은 尹정부

2022. 5. 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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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건전성 훼손한 프랑스, 영국에 패배
文정부 5년..물가 급등에 원화가치 급락
화폐가치는 항상 유지할 국가경제 기반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지난 10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집권당이 바뀌었다. 본인이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불쾌한 이들도 많겠으나, 대한민국은 평화롭게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 또 입증됐다.

이번 대선에서 1·2위 득표율 차이가 0.73%포인트에 불과했지만, 이 수치가 새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유권자 48.56%의 선택을 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7년 대선 득표율은 41.08%였다. 당선된 후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본인 소신대로 변화시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달라졌을까. 문화와 이념 차원에서 이 물음을 제기하면 저마다 다른 답변을 할 것이다. 경제의 영역에서는 보다 객관적인 답들이 나온다. 가장 가시적인 지표 중 하나인 환율을 보면 5년의 세월 동안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던 2017년 5월 10일, 원·달러 환율은 1131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2022년 5월 9일 원·달러 환율은 1272원70전이었다. 5년 만에 환율이 약 12.5% 올랐고, 달러값은 141원70전 더 비싸졌다. 달러를 벌려면 전 세계에 수출해야 하고 문명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물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무역국가 대한민국에서 통화의 가치가 이렇듯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환율과 아울러 물가상승률도 모든 시민의 피부에 매우 예민하게 와 닿는 지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걸어 나오며 지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5월 9일, 국내 정치의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한 외국계 은행은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6%로 예측했다. 물가가 올라갈수록 내가 가진 원화의 가치는 속절없이 쪼그라든다.

새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회복시킬뿐더러 대한민국 화폐 가치도 회복해야 할 책임을 안게 됐다.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자가 만만치 않듯이, 후자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화폐가 지폐가 아니라 금과 은이던 시대에는 나라의 통치자가 화폐 가치를 보존하는 방법은 단순명료했다. 화폐의 순도를 수호하면 화폐 가치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근대 영국의 경우 은화 1파운드 스털링(pound sterling)은 1601년부터 1816년까지 변함없이 은 111.4g 함량을 유지했다.

반면, 영국의 경쟁국 프랑스에서는 은화 및 금화의 은과 금 함량이 1641년 반으로 줄었다가 1726년 다시 또 거의 반으로 줄었다. 프랑스 왕들의 헤픈 씀씀이가 초래한 재정 위기가 원인이었다. 프랑스 국왕은 재정건전성을 증진하는 올바른 길을 회피하고, 같은 양의 은과 금으로 돈을 더 많이 찍어내는 편법을 택했다. 18세기 내내 프랑스와 영국은 세계 무대를 지배할 패권을 두고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고집스럽게 파운드의 가치를 수호한 영국은 화폐 가치에 함부로 손을 댄 프랑스 왕국에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화폐의 순도와 가치에 도전하는 적들은 내부에도 있었다. 탐욕스러운 민중은 은화의 둘레를 깎아서 모은 은을 팔아먹었다. 영국에서는 이를 클리핑(clipping)이라고 불렀다. 위조화폐를 제조해서 유통하는 자들도 있었다. 클리핑과 화폐 위조는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잡히면 사형당하는 중범죄였다. 클리핑을 자행한 죄인은 법정에서 사형이 유배형으로 감형될 수 있었으나, 화폐 위조는 화폐 가치 수호를 책임진 국왕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죄로 분류됐기에 용서받기 어려웠다.

극도로 복잡한 21세기의 세계화한 국제금융 질서에 편입돼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화폐 가치를 수호하는 일은 근대 영국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난제다. 화폐 가치를 10분의 1 이상 ‘깎아 먹은’ 범인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환율을 수호하기 위해 외환당국이 개입할 수 있겠으나, 실물경제의 활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원화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 나라 살림을 새로 떠맡은 윤석열 정부가 치솟는 물가와 불안한 환율에 어떻게 대처할지 전 국민이 기대와 걱정 속에 지켜보고 있다.

클립핑으로 잘라낸 은화 테두리(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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