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금융·에너지에 식량까지..정치가 경제적 질서 '좌지우지'

반기웅 기자 2022. 5. 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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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왜 '안보'가 됐나

[경향신문]

저비용·고효율 분업 위한 세계화
글로벌 공급망 균열 따라 무력화
IPEF 출범으로 ‘지경학 시대’로
경제·안보는 ‘한 몸’이 되어간다

“우리는 경제가 안보, 안보가 경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를 핵심의제로 꺼내든 것은 최근의 국제경제 질서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공급망(GVC·Global Value Chain)을 통해 ‘저비용·고효율’의 분업 체제를 구축했던 세계화는 무력해지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경제의 성장은 자유무역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 앞다퉈 관세 장벽을 낮췄고, 기업은 비용 최소화 전략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공급망에 큰 충격을 가했다. 물류가 멈추자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공급이 막히면서 각국의 물가가 크게 뛰었다. 공급망이 멈춰선 사이 미·중 갈등은 첨예해졌고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문을 걸어 잠갔다. 미·중은 동맹국과 함께 본격적인 블록화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식량과 같은 먹고사는 데 필수적인 원자재는 물론 산업 필수재에 해당하는 반도체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국가적 ‘안보’의 문제가 된 것이다.

거창한 국제경제 질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제안보’는 민생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공급망 교란은 요소수 사태와 반도체 수급난을 불렀고 장바구니 물가마저 치솟게 만들었다. 대러시아 제재가 강화되면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고, 곡물 가격도 오르면서 밥상물가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중단하고, 인도가 밀 수출을 멈추겠다고 선언하는 등 자원 민족주의 움직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원·부자재 조달이 흔들리면 당장 서민들의 삶이 직격탄을 맞는다.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빼더라도 이미 미국과 중국은 경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기존 공급망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미국은 경제안보 핵심 품목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신뢰할 만한 나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꾀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수십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세계화 체제는 이제 종식됐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패권주의로 가면서 전 세계가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진영으로 나뉘는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협의체인 IPEF 출범이 본격적으로 ‘지경학(Geo-economics) 시대’를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경학은 무역과 투자·금융통화 정책, 에너지·원자재 거래, 경제제재 등 경제적 수단을 사용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뜻한다. 실제 IPEF는 단순한 경제협력체를 넘어선 ‘경제안보 플랫폼’으로 간주되고 있다. 핵심 소재 및 산업(반도체)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디지털 경제, 무역 원활화, 탈탄소·청정 에너지, 인프라, 노동자의 권리 등 6개 분야별로 참여국들 간의 합의에 기반한 협의체로 추진된다.

중국이 주도한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대항마적 성격이 짙다. 경제동맹을 지향하는 만큼 한국이 IPEF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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