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소울리스좌
[경향신문]
영혼 없는 눈빛, 타성에 젖은 걸음과 대비되는 생기발랄한 속사포랩으로 놀이기구 이용안내를 하는 ‘소울리스좌’가 화제다. 유튜브 동영상이 22일 기준 1200만뷰를 돌파했다. 주인공은 에버랜드 ‘아마존 익스프레스’의 전직 캐스트(계약직 직원) 김한나씨(23)다. 표정은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듯한데 업무 수행은 완벽한 ‘반전’에 직장인들이 특히 열광한다.
김씨는 BBC코리아 인터뷰에서 “영혼이 없다는 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최적의 효율을 찾아서 일을 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혼 없는’이란 부정적 의미의 ‘소울리스(soulless)’가 노동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최적화한 상태라는 새로운 맥락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체력과 감정까지 모두 쏟아붓기를 요구해온 자기착취적 노동윤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길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 직장인 3명 중 2명(64%)이 최근 1년간 번아웃(소진)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성취감에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업무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번아웃으로 이어진다고도 지적한다.
마라톤 완주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것처럼,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노동을 하려면 일과 자아 사이에 적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배우 박진주씨가 보여준 간호사의 모습이 그 예로 꼽힌다. 환자에게 친절하며 업무를 깔끔하게 수행하지만 감정적으로는 하늘에 떠 있는 한 마리의 매처럼 초연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소울리스’의 비결은 뭘까. 김한나씨는 “처음 일을 배울 때 쉽지 않았다”며 “저 같은 경우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아마 영혼이 없기 전까지 매우 큰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을 통해 기능을 습득하되 자신의 적정 페이스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씨는 지난달 캐스트 계약 만료 이후 에버랜드 홍보팀에 입사했다고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되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신세대 노동자들의 등장을 응원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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