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산업도 미국 쏠림..ICT 수출 등 중국 리스크 커질듯
미국 주도 IPEF 창립 멤버로 참여
사실상 중국배제 무역질서 재편
반도체 등 기술격차 시간 벌었지만
'안미경중' 암묵적 통상기조 허물어
2025년 이후 미 반도체 과잉 우려
"장기적으로 수출 한국엔 이익 없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경제 안보’였다. 두 나라 정상은 반도체·전기차 등의 기술 동맹을 강화해, 이들의 공급망을 미국이 주도하는 형태로 재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선언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쟁 우위를 지키려는 우리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닿은 결과로 볼 수 있다. 미래·첨단 기술에서 미국과의 협력 강화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와 평가가 많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미국은 첨단·미래 산업에서 절대적인 기술 우위와 시장을 갖고 있고, 우리는 막강한 제조 능력이 있다. 중국의 추격은 미국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적극적으로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트럼프 정부 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덕분에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3년 정도 더 벌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주도의 새로운 무역질서(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수립에 우리나라가 창립 멤버로 참여함으로써, 외교·안보뿐 아니라 통상·산업 부문의 균형추 역시 미국 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됐다.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중국을 배제하는 협력체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안보의 대상으로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권위주의 질서”를 지목하고, 참여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나라들이라고 선언했다. 사실상 중국을 배제한 동맹국·우방국 중심의 무역 질서 재편인 셈이다.
실제 아이피이에프의 주요 협력 의제는 공정한 무역, 공급망 탄력성, 탈탄소, 반부패 등으로, 중국 정부의 민간 보조금과 불공정 거래, 시장 왜곡 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국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 처지에서는 자신들한테 불리한 무역기술장벽이 새로운 무역 규범이 되는 걸 우려한다. 미국 주도 공급망에 올라 타는 게 우리한테 여러모로 이득이지만, 공식적으로 중국 배제 카르텔에 참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 경제의 외부 변수에서 내생적 변수가 된다면 이로울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암묵적인 통상 기조는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글로벌 분업 구조에 기대어 중국 의존도가 커진 ‘수출 대한민국’엔 중국 리스크가 커질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교역 비중은 25% 정도다.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 등 이른바 첨단산업 분야의 대중국 비중은 더 크다. 지난 4월 기준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42%, 수입은 37%다. 대중국 수출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이 반도체다. 첨단산업에서도 중국에서 원자재·중간재를 들여오고 완성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게 기본 구조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면 “장기적으로 한국에 이익이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벌릴 수는 있겠지만, 첨단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중국 대체선을 찾는 건 비경제적 선택이라는 얘기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 반도체 공장은 이미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지난해부터 추가 투자로 공정 고도화에 나섰지만, 미국의 수출 통제로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노광장비(EUV)를 반입하지 못해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정 고도화를 제때 하지 못하면 다른 메모리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두고도 장기적인 국익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한국·대만·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70~75%가 생산되는 상황을 지정학적 안보 위험으로 보고, 향후 10년 안에 미국산 반도체를 전세계 생산량의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 인텔 등을 통해 자국내 생산기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반도체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2025년 이후부터 대대적인 물량 경쟁과 공급 과잉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반도체 부품업체 대표는 “미국의 칩셋 고객사들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물량을 발주한다는 아무런 담보가 없다. 상대적으로 국내 생산기지의 역할은 줄고, 자칫 반도체 강국의 지위도 빼앗길 수 있다. 우리만의 전략으로 해외 투자의 시간표와 규모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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