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에게 전하는 당부

정환봉 2022. 5. 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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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과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탐사기획팀장 겸 소통데스크

실망은 믿음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실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을 허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선제일검’.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진심 같은 이 호칭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별명이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재벌, 정권 핵심 인물까지 가리지 않고 수사한 그를 나는 내심 응원했다. 과잉 수사 논란이 일 때는 비판적이기도 했다. 세상만사를 수사로 해결하는 것에 부정적인 터라,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과잉은, 잘못을 하고도 억울함을 앞세우고 힘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권력’이 유발한 측면이 크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믿음이 허물어진 것은 그의 딸이 복지관에 노트북을 기부하는 과정에서 ‘부모 찬스’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보도를 한 뒤였다. 취재 과정에서 한 장관의 딸이 짧은 시기 여러 건의 논문과 책을 쓰고, 다양한 대회에서 수상했으며, 외할머니 건물에서 유학 전문 학원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를 연 사실을 확인했다. 부모의 힘이나 전문 입시 컨설팅 없이 홀로 하기 힘든 일로 보였다. 인사 검증 국면에서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과잉 비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보도를 망설이게 했다.

그러던 중 외신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딸의 인터뷰 기사였다. 한 복지관의 온라인 수업을 돕기 위해 여러 기업에 노트북 기부를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보냈는데, 고맙게도 한국쓰리엠에서 이를 수락했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결과는 인터뷰와 달랐다. 한국쓰리엠에는 한 장관 배우자와 친한 친구가 임원으로 있었고, 노트북 기부는 그 임원을 고리로 이뤄졌다. 한국쓰리엠 쪽은 처음 해명에서 다른 청년단체와 연계한 복지관들도 지원했지만, 심사를 거쳐 한 장관의 딸이 봉사하는 복지관에 노트북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기회를 잃은 셈이다. 당시 검사장으로 고위 공무원이었던 한 장관의 딸과 연계된 복지관에 특정 기업이 노트북 여러 대를 기부한 것을 ‘부모 찬스’ 외에 다른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한 장관의 딸 쪽이 기부 활동의 증거를 남긴 곳은 인터뷰뿐이 아니었다. 딸이 대표로 있는 봉사단체인 ‘피스 오브 탤런트’(PIECE OF TALENT·POT) 명의는 기증식 때 쓰인 패널에 적혀 사진으로 남았다. 복지관 소식지에는 “POT 봉사단의 연계로 화상수업에 필요한 노트북 25대를 한국쓰리엠(주)에서 지원”받았다고 적혔다. 미국 대학 입시용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사정이다.

보도를 한 날, 반박을 예상했지만 ‘송구하다’는 흔한 말 한마디는 덧붙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한 장관은 기사 중간제목에 ‘명의’라는 두 글자를 문제 삼아 기자들을 고소했다. 기부금 영수증 발행처가 한국쓰리엠이었기에 명의가 딸이 아니었다는 ‘법 기술자’의 언어를 동원했다. 디지털을 기준으로 2282자의 기사 중 38%인 864자를 한 장관 쪽과 한국쓰리엠의 해명으로 담은 기사를 ‘악의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고소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뜻대로 중간제목을 바로잡았다. 그러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보도 이후인 지난 15일 그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남긴 사직 인사를 읽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할 사람의 사직 인사로는 부적절하다 생각했지만, 글 자체에는 울림이 컸다. 특히 “직업인으로서 밥 벌어먹기 위해 일하는 기준이 ‘정의와 상식’인 직업”이며 “그 직업윤리를 믿었다”는 내용에 크게 공감했다.

나에게도 기자의 직업윤리는 ‘정의’나 ‘공정’이 진영마다 달리 쓰이는 시절을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이젠 권력자가 된 그에게 당부하고 싶다.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별의별 린치”를 하며 “팩트와 상식을 무기로”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억울”하게 하는 당신을 목격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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