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종교] 자연스러움과 맞서야 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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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성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접할 때가 있다.
과학은 '자연 세계'에 관한 것이고, 종교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견에 비추어 볼 때, 종교는 인지적으로 자연스러운 반면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보다 종교적 신앙이 더 오래 전부터 더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연스러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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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구형찬 | 인지종교학자
“제발 이성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접할 때가 있다. ‘이성의 부재’는 미성숙하거나 위험하거나 병리적이거나 심지어 인간답지 않은 상태와 동일시된다. 즉, 이성은 합리적 판단과 행동의 근원으로서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고 여겨지는 듯하다.
물론 우리가 언제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광기 어린 참혹한 전장에서, 종교의 근본주의적 열정에서, 그리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멈추지 못하는 자신의 일상에서 합리성의 결핍을 감지한다. 그래도 우리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비합리적인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거나 불합리한 요구에 강하게 저항할 줄도 안다. 완전하지는 못해도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이성적 동물’이 일구어낸 문화는 역설적이게도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존재나 힘 또는 원리에 대한 비합리적인 믿음이나 이야기는 세계의 어느 문화에서나 예외 없이 나타난다. 사람처럼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영혼 같은 존재라든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상이라든지, 소원을 들어주거나 무언가를 계시해주는 돌이나 나무 혹은 조각상 같은 특별한 사물 등에 대한 믿음과 이야기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지만 인류 문화에 널리 퍼져 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인지과학의 지식은 인간에게 이상적인 합리성을 구현하는 완벽한 이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의심하게 한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한정된 정보와 시간의 한계 속에서 적당해 보이는 것을 빠르게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판단을 제약하는 지각, 기억, 주의, 이해 능력에는 특징적인 편향과 기능적 한계가 있다. 환경의 자극이나 감정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이성의 존재 여부를 입증할 신경과학적 증거도 찾기 힘들다.
미국 에머리대학교 ‘마음, 뇌, 문화 연구소’의 로버트 매콜리 교수는 ‘자연적’이라는 단어는 과학이 아니라 종교에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뭔가 이상한 주장이다. 과학은 ‘자연 세계’에 관한 것이고, 종교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콜리 교수는 그 주장의 의미를 아주 분명하고 간략하게 밝힌다. 과학적 발견에 비추어 볼 때, 종교는 인지적으로 자연스러운 반면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종교적 사고는 불확실한 세계를 경험하는 동안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의 부수적인 효과로 발생할 수 있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해 문화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교리의 세계도 있지만, 교리를 학습하지 않은 신자라고 해서 덜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과학은 체계적인 교육,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과 검증의 절차, 그리고 과학자들의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지 않다. 인지적인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과학적 지식보다 종교적 신앙이 더 오래 전부터 더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연스러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인지적인 자연스러움은 다수의 심기를 편하게 해준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과학처럼 자연스러움을 애써 넘어서야 성취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이기적인 욕망, 증오, 차별의 심리는 인지적으로 자연스럽다. 전쟁, 환경과 기후의 위기, 불평등과 같은 크고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우리’가 힘을 내서 그 자연스러움과 씨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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