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

한겨레 2022. 5. 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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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디지털 혁명이 촉진한 부족주의적 편가르기로 우리 편 전문가와 지식인은 무슨 말을 하건 추앙의 대상이다. 이에 따라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반지성주의는 편가르기와 동의어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이후 여야는 한동안 상대편을 향해 ‘반지성주의’라고 비판하는 ‘반지성주의 공방’을 벌였지만, 하나 마나 한 일이었다. 양쪽 모두 반지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편협한 정의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사실 반지성주의라는 주제로 논쟁하긴 어렵다. 이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쓴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3년에 출간한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책에서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방어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자의적인 행위여서 별다른 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반지성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반지성적’이라고 일컫는 태도나 사고에 대한 공통된 감정을 지적하는 것으로 정의를 대신했다. 그것은 바로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다.

호프스태터는 주로 1950년대에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의 광풍을 고발하기 위한 역사적 분석의 목적으로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을 썼기 때문에 그런 수준의 정의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널리 사용되면서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라는 단순한 정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국의 현실을 보자.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사람이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고, 진보와 보수는 각각 상대편을 반지성주의라 비판하고, 페미니스트들과 그 비판자들도 각각 상대편을 반지성주의라 비판하고, 감성주의를 반지성주의로 간주하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사회적 현상이 다 그렇듯이, 반지성주의의 부상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건 평등 정신이다. 호프스태터가 반지성주의의 한 축으로 간주한 ‘종교적 반합리주의’만 해도 당시엔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었다. 1720년대에 시작돼 1740년대에 절정에 달한 대각성 운동은 당시 개신교가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지배 계층으로 떠오른 부유하고 힘 있는 엘리트들 중심의 종교였다는 점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신앙부흥운동가들은 지성적인 교계가 신의 뜻에서 멀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지식이나 교양보다는 직관을 강조했다. 그들은 ‘서커스 예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단에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고 우레와 같이 고함을 지르며 때로는 강단 위를 춤추며 돌아다니는 설교 행위로 청중의 감성에 호소했다. 호프스태터는 이런 부흥운동가들의 활약에 “목사들은 마치 무대 위의 가무단 맨 앞줄에 선 젊은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을 보고 있는 늙은 아내와 같은 심정이었다”고 썼다.

지성의 소유자들은 주로 기득권 엘리트 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반기득권 투쟁은 자연스럽게 반지성주의로 발전했으며, 이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지성을 대변하는 계급은 대중의 이런 민주주의 열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자기소외에 빠져들고 있었다.

오늘날 디지털 혁명은 280년 전의 신앙부흥운동과 비슷한 일을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공론장을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성한 가운데, 이른바 ‘집단사고’,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등과 같은 현상이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와 더 화끈한 콘텐츠를 제공해달라는 수요가 폭증했다. 미국 정치학자 톰 니컬스는 디지털 혁명이 ‘전문가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개탄했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전문가와 지식인은 디지털 혁명이 촉진한 부족주의적 편가르기에 흡수되었다. 무슨 말을 하건, 반대편 전문가와 지식인만 매도의 대상일 뿐 우리 편 전문가와 지식인은 추앙의 대상이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우리 편 논객들에겐 무한대의 ‘궤변 면책특권’이 주어졌으며, 그들은 같은 부족 진영 내에서 부족원들의 사랑과 존경까지 누리는 정신적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반지성주의는 나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로써 반지성주의는 편가르기와 동의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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