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9년 만에 중도좌파 노동당 집권 ..기후·대외정책 기조 변화 주목

박은하 기자 2022. 5. 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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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노동당대표가 22일(현지시간) 선거 승리를 확정지은 뒤 시드니에서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호주에서 9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앤서니 알바니즈 대표(59)가 이끄는 중도좌파 성향 노동당이 21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인 집권 자유·국민연합을 꺾고 다수당이 됐다. 서방의 대중국 견제 최전선에 섰던 호주의 대외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호주 ABC방송 등에 따르면 하원의원 151명과 상원의원 40명을 뽑는 이번 총선에서 개표가 70.7% 이뤄진 현재 노동당은 하원 72석을 확보했다. 자유·국민연합은 52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녹색당과 무소속 후보 등이 15석을 차지했다. 12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노동당의 승리는 확정됐으며 남은 관심사는 하원의원 76석 이상을 얻어 단독 과반을 확보하느냐다. 노동당은 2013년 9월 총선에서 자유·국민연합에 패한 뒤 약 9년 만에 정권을 되찾게 됐다.

‘청록색’을 상징으로 삼고 급진적 기후정책을 제안한 무소속 후보들과 녹색당 등 ‘제3정치세력’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로 하원 의석이 1석에서 3석으로 늘어났다. 상원에서도 역대 최대 의석인 12석을 확보할 전망이다. 성평등과 기후공약 등을 내세운 무소속 후보들은 현역 여당의원들을 꺾고 9석을 확보했다. 노동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담 밴트 녹색당 대표는 “이번 선거 결과는 기후와 불평등 조치에 대응하라는 명령”이라고 말했다. 맬버른에서 현직 재무장관인 조시 프라이덴베르그 의원을 꺾은 모니크 라이언 무소속 후보는 “청록색 혁명이 일어났다. 무소속이야말로 변화의 열망을 상징한다”며 “노동당이 더 강한 기후정책을 펼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기후변화가 녹색당과 청록색 무소속의 약진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청록색 무수속 후보들의 대거 당선은 도시지역에서 양당제 구도를 깨뜨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호주ABC방송은 “노동당은 부동층의 정권심판론 수혜를 혜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양당제에서 한 발짝 멀어진 선거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개표가 진행되는 도중 TV연설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노동당에게 축하를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대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치유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물러난 존 하워드 총리 이후 처음으로 임기를 마친 총리가 됐다.

알바니즈 대표는 23일 총리 취임 선서를 하고 다음날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승리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사회서비스 투자를 늘리고, 기후변화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호주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싶다”며 “우리의 공동 목적을 추구하고 두려움과 분열이 아닌 화합과 낙관주의를 촉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22일(현지시간)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노동당 대표가 총선 승리 후 시드니의 한 도서관에서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시드니 AFP 연합뉴스


환경 문제와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면서 초래된 경제 상황 악화는 집권당에 대한 심판론을 키운 것으로 평가된다. 호주는 최근 몇년 간 대규모 자연재해에 시달렸다. 2019년 말~2020년 초 호주 전역에서 발생한 ‘블랙 서머(검은 여름)’ 산불로 인해 남한 면적보다 2배 넓은 2400만ha가 불에 탔고, 33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난해와 올봄에는 동부 해안가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마을이 물에 잠기고 수조원대 피해가 발생했다. 거듭되는 재난으로 주택보험료가 2004년 대비 4배 가까이 치솟는 등 가계 부담도 증가했다. 홍수 피해가 덜한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 급등에 일조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호주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노동당은 이런 상황에 맞춰 국민들에 대한 더많은 재정지원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약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노동당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자유·국민엽합이 2005년 대비 26~28% 감축하겠다고 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감축 목표치를 43%로 상향하겠다고 약속했다. 청록색 무소속과 녹색당은 노동당의 공약도 미진하다고 비판하며 각각 50~60%와 75% 감축을 주장했다.

반면 모리슨 총리는 블랙 서머 기간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갔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3월 대홍수 때에도 비상사태를 늦게 선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산불과 기후변화 간의 관련성을 한동안 인정하지 않고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도 불참하는 등 기후대응에 소극적 행보를 보였다. 오커스 결성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는 등 불필요하게 갈등을 부추기는 외교정책 스타일도 문제가 됐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전 외무장관은 이날 퇴임하면서 “모리슨 총리가 선거에서 져서 아주 편안하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정권교체에 따른 대외정책 변화 여부는 관심사로 떠올랐다. 알바니즈 대표는 미국 등 서방의 대중국 공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모리슨 정부의 외교 기조를 두고 “초강대국(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호주 언론들은 새 정부의 외교 정책 역시 “중국의 남태평양 확장을 견제하려는 모리슨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중국 메시지가 부드러워질 수는 있지만 정책 기조는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쿼드나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가 위기에 처하는 일도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알바니즈 대표는 당선 후 BBC 인터뷰에서 오커스를 강력히 지지하며 기후 행동에서 세계의 지도자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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