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레터>권위에서 나오는 칸의 '깐깐함'
칸(프랑스)=글·사진 안진용 기자
어느덧 75돌을 맞은 칸국제영화제,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이 영화제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영화’에 빗댑니다. 머리칸과 꼬리칸에 나뉘어 기차에 오른 ‘설국영화’의 등장 인물들의 관계처럼, 영화제 내에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신분 차이는 눈에 환희 보입니다.
지난 2010년 영화 ‘하녀’ 이후 12년 만에 영화 ‘헌트’의 감독 겸 배우 자격으로 다시 칸의 부름을 받은 이정재는 21일 나눈 인터뷰에서 “(웃으며)‘하녀’ 때 주변에서 ‘깐느병 걸리면 안된다’고 말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요. 칸영화제의 권위, 그리고 초청 감독과 배우를 향한 영화제의 대우를 경험하고 나면, “또 칸에 가고 싶다”는 상사병에 걸리기 쉽다는 농담이죠.
칸영화제는 시상을 하는 경쟁부문을 비롯해 비경쟁부문, 이정재 감독의 ‘헌트’가 상영된 미드나잇 스크리닝,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리’가 속한 비평가주간, 주목할만한 시선 등의 섹션으로 구분됩니다. 이 중 칸영화제의 꽃인 레드카펫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뤼미에르 극장은 경쟁부문 진출작을 비롯한 화제작에게만 허락되죠. 그밖의 영화는 살레 드뷔시 극장에서 상영되는데요. ‘헌트’의 경우 뤼미에르 극장을 통해 소개됐습니다.
초청 부문에 따라 감독이나 배우에게 주어지는 호텔 등급과 방크기 역시 차이가 납니다. 뤼미에르 극장 맞은편에 위치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제스틱 호텔이 첫 손에 꼽히고, 마르티네즈, 칼튼, 그레이다비뇽 호텔 등으로 나뉘어 배정되죠.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이는 없는데요. 칸에 초청받길 원하고, 찾는 이들이 많은 반면 기반 시설은 한정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줄세우기’죠. 결국 이는 모두가 칸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그림입니다. (칸, 베네치아, 베를린영화제를 ‘3대 영화제’라 부르지만, 칸이 사실상 ‘No.1’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칸은 ‘관계’를 중시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를 가져와도 신인 감독에게 덜컥 큰 상을 주는 경우는 드물죠. 각 부문 별로 단계를 거친 뒤 경쟁 부문에서도 여러 부문을 섭렵하면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으로 가는 수순을 밟는 사례가 많은데요. 이미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을 받고 경쟁부문 심사위원까지 거친 박찬욱 감독이 신작 ‘헤어질 결심’을 들고 다시 칸을 찾은 것을 두고, “(수상 가능성이)무르익었다”고 점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고, 박찬욱·봉준호 감독에 이어 이번에는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브로커’로 칸을 노크하는 배우 송강호의 수상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비슷한 맥락이죠.
취재진 역시 칸에 입성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설국열차’에 올라탄 경험을 합니다. 단순히 “취재하고 싶습니다”라는 차원의 신청이 아니라 소속 매체의 발행 부수와 일정 기간 홈페이지 방문자수, 과거 칸영화제 취재 이력 및 작성 기사까지 ‘인증’해야 하죠. 이후에도 취재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꽤 긴 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려야 하는데요. 취재증(사진)의 유무는 취재 과정에서 엄청난 차이를 안기기 때문입니다. 프레스룸 사용 뿐만 아니라 공식 상영 후 기자회견 참석, 각종 행사 출입 역시 취재증을 가진 기자에게만 허락되는데요. 또한 고된 취재 후 프레스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따뜻한 네스프레소, 그리고 시원한 산펠레그리노 한 잔을 마시는 것은 “나도 이 기차에 올라탔다”는 묘한 만족감을 줍니다.
하지만 취재증에도 등급이 있죠. 최고 등급인 하얀색 배지를 가진 기자는 대기줄에 서지 않고 우선 입장합니다. 그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순 없는데요. 수십년 간 이 영화제를 취재해온 기자에게 주최 측이 부여한 혜택이자 권위죠. 어느덧 네번째 칸을 찾은 문화일보 기자에게 주어진 배지는 로즈(분홍색)였습니다. 이 외에도 블루나 옐로우 배지가 있는데요. 로즈만 갖고 있어도 취재에 큰 지장은 없지만 간혹 외국인 기자의 목에 걸린 화이트 배지가 그토록 오색찬란하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공식 상영에 참석할 때는 취재진 역시 드레스 코드를 준수해야 합니다. 남성은 검은색 계열의 정장에 보타이를 매야 하고, 여성은 드레스를 입어야 하죠. 신발은 반드시 구두여야 합니다. 칸의 깐깐함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장기간 구축한 그들의 영향력과 노력 덕분에 이는 ‘갑질’이 아닌 ‘전통’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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