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위 카지노, 경계가 무너지면?..뜬금없이 상상해봤다

김은형 2022. 5. 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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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겨레문학상 당선작 '아이들의 땅' 강성봉 작가
"유년과 청년 시절 보낸 정선 변천사 모티브 삼아
카지노 전당포집 아이가 본 도시와 이웃들 흥망성쇠
잡지, 출판사에서 십수년 남을 위해서만 써온 글
명상하듯 시작한 소설, 내 글에 대한 갈증 풀어내"
장편소설 <아이들의 땅>으로 제27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강성봉 작가.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출발은 로버트 매키였다.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강성봉(43) 작가는 2019년 출판 편집자로서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구루’로 통하는 스토리텔링 전문가인 로버트 매키의 책을 만들면서 수상작 <아이들의 땅>의 설계를 시작했다.

“편집자들은 책을 만들면서 실제로 책이 말하는 내용이 정말 말이 되는지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요가 책을 내면서 몇달 요가를 직접 해본다든가 하는 거죠. 그래서 책 목차와 조언에 따라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이야기의 얼개를 짜면서 작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법서 한권 본다고 장편소설 한편이 뚝딱 만들어진다면 누구나 쉽게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두명이었던 화자를 하나로 줄이고, 처음에는 없었던 이야기의 가지를 치고, 글 구성도 다 바꾸면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죠.” 그렇게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강 작가는 11년간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만들어온 베테랑 편집자다. 그 전에는 3년간 잡지 기자로 일했다. 기사를 쓰거나 보도자료를 쓰는 등 꾸준히 ‘쓰는’ 일을 했지만 저자 등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이걸 채우기 위해 습관처럼 매일 아침 출근 전 30분이나 한시간씩 글을 써왔다. 일과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소설을 쓰는 게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이것을 “일종의 명상작업 같다”고 말한다. 회사원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에 완성한 <아이들의 땅>은 이전에 단편으로 작업했던 소재를 장편으로 가져와 쇠락한 탄광촌과 그 위에 지어진 카지노 도시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장편소설 <아이들의 땅>으로 제27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강성봉 작가.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꼬마 때인 1980년대에 정선에서 2~3년 살았고, 제대 후에는 카지노가 지어지고 있을 때 선배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몇년 동안 했어요. 카지노가 지어진 다음에는 몇번 놀러 가기도 하고. 도시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탄광 위에 지어진 카지노라는 게 상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두 세계를 가르는 땅이 내려앉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뜬금없는 상상을 해봤죠. 그런데 검색해보니 카지노 근처 골프장 건설 현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실제 발생한 적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의 땅>은 카지노 도시의 전당포집에서 업둥이로 자란 아이의 눈으로 본 도시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열살쯤 된 ‘나’에게는 억척스럽게 이 도시에서 살아남은 전당포 주인 할머니와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 그리고 어떤 계기로 도박중독에 빠졌다가 폐인처럼 살아가며 “랜드가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니는 삼촌이 있다.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 궁금한 아이가 출생의 비밀에 다가가면서 카지노를 지탱하던 연약한 지반도 점차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른과 아이 둘을 화자로 내세워서 이야기를 전개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아이의 마음에 좀 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밟고 사는 땅도 결국은 미래를 살 아이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작품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할머니는 “아이는 어른들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가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왔을 터. <아이들의 땅>은 8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우리 사회의 축약도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대학 시절 대학문학상에서 소설로 가작을 수상한 적은 있지만 작가로 본격적인 수상은 처음이다. 그동안 마무리한 장편만 4편을 쟁여둘 정도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도 “응모작이 결선에 올랐다는 사실을 몇년 뒤 기사 검색하다가 확인했”을 정도로 등단에 매진을 해오진 않았단다. 책 만드는 일도 소설 쓰는 일만큼이나 그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창작을 꿈꾸며 출판사 편집자가 되거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저자로 데뷔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편집 일이 창작에 도움이 될까? “작가를 위해 읽고 쓰는 기술적 훈련을 통해 텍스트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어요. 특히 보도자료를 쓰면서 이 책이 겨냥하는 타깃 독자를 명확히 하고 자신이 쓴 글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도 개발이 되죠. 하지만 창작은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훈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도 당연히 있겠죠.” 본인이 직접 편집을 하지 않아도 다른 부서에서 만드는 문학작품들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편집자로서의 장점이란다. 그럼 작법서는?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회를 많이 다닌다고 작곡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듯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바로 쓰기는 아무래도 힘들죠. 글도 기술과 형식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소설 작법서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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